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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2.22(수) 17:54

우리는 누구인가?


한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많은 사람이 한해 동안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인가?'라고 묻고 답하는 것 역시 자연스럽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를 묻고 답하는 것은 한해의 반성이 그러하듯이 회고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우리 한국인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반드시 대답해야 할 질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연말이나 연초에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한해를 계획한다. 이것은 해의 바뀜이나 계절의 변화에 따라 감회가 남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누구인가를 묻는 것은 계절의 변화나 해의 바뀜에 따른 감회 때문이 아니다. 우리 한국사회가 중요한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맞닥뜨린 변화의 요인은 크게 민주화, 지구화, 정보화 세 가지다. 이 요인들이 변화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민주화는 우리의 ‘반공’과 ‘전체주의’라는 우상을 깨뜨렸다. 민주화 이후 사람들은 비판 없이 만들어진 권위와 도그마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시민의 자유, 참여, 복지를 보장하지 않으면서 국가가 시민에게 맹목적 충성과 의무 이행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지구화는 단일한 혈통에 기초를 둔 민족 공동체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같은 민족인 조선족이나 북한이탈 주민과 우리가 가진 엄청난 차이를 드러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문화적·인종적으로 이전보다 훨씬 더 다양해졌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국인들을 상대하면서 단일민족이란 비전의 ‘가보’가 사실은 아무도 신경 안 쓰는 평범한 조약돌이란 것 역시 깨닫게 됐다. 정보화가 안정된 직장, 빠른 성장과 높은 임금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 역시 깨져 버렸다. 정보화 이후 급속히 생산성이 향상되고 전례 없이 엄청나게 많은 액수의 상품을 수출하고 있지만, 실업자는 줄어들 줄을 모르고, 고용 안정성마저 나빠졌으며, 빈부격차는 심화되고 있다. 고속 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성장주의도 빛을 잃어가고 있다.

반공이라든가,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전체주의라든가, 혈통적 혹은 가족적 공동체주의, 성장주의 등이 빛을 잃어가는 때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가? 일부에서는 반공이나 전체주의, 성장주의를 되살리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혁명 이후 왕당파가 왕정복고에 실패했듯이 한국에서 민주화 이후 수구 세력이 시도했던 반공적 마녀사냥 역시 실패했다. 한나라당의 국가 정체성에 대한 문제 제기 역시 그것이 과거로 돌아가려는 시도라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국가 정체성이 문제라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 지향적이고 민주화, 지구화, 정보화에 걸맞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다.

독립전쟁 이후 프랭클린을 비롯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그 당시 최첨단 사상들을 받아들여 미국의 국가 이념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러한 이념은 이질적인 이민자들을 하나로 묶어 미국이 강력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낡은 국가 이념이 무용지물이 된 지금 우리도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이념을 새롭게 준비해야 한다. 이것은 우선 자유와 다원성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등 공동체적 가치를 담아내야 할 것이다. 실업 등 사회적 재난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해 줌으로써 시민에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줄 수 있는 공동체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혈통에 의한 폐쇄적 공동체를 지향하기보다는 책임을 다하는 모든 사람을 시민으로 존중하는 열린 공동체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6·25 때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을 지켰던 화교들을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전철을 다시 밟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르는 사이에 대한민국의 결속은 점점 더 약화될 것이다.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 공동체가 가지는 결속력이 약화되고 있는 징조로 보는 것은 노파심일까?

최현/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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