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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1.24(수) 20:29

정보화가 청년을 먹어치운다?


능력있고 성실한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나는, 그런 젊은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일할 의욕이 넘치고 능력도 있는 젊은이들이 일자리 없이 떠도는 현실을 보며, 나는 16세기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했다는 “양이 농민을 먹어치운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 말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하고 있던 당시 영국의 현실을 반영했다. 그때 영국에서는 산업의 발전으로 양모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그러자 지주들은 공유지에서 농민을 몰아내고 그 땅에 양들을 풀어놓았다. 엄청난 수의 농민들이 일터를 잃고 거리를 헤매야만 했다. 그들을 공장과 기업이 흡수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선 충분한 일자리를 제공할 만큼 공장과 기업이 증가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농민들 또한 자영농에서 임금 노동자로 변화하는 조건에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많은 농민들은 공장에서 일을 하지 않고 떠돌다 감옥에 갇히거나 얼굴에 낙인을 찍히는 고통을 당한 뒤에야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공업이 농민을 어느 정도 흡수한 이후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실업자로 떠돌아야 했다. 일자리를 얻은 사람도 극심한 경쟁 때문에 극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불안정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서구 산업사회가 실업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재교육하는 데 사회적 비용을 쓰기까지 많은 시간과 피와 땀이 필요했다.

산업사회에서 정보지식사회로 전환하고 있다는 지금 한국의 청년 실업을 보며, 양이 농민을 먹어치웠던 역사가 우리에게 재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한다. 경영학자나 기업가들은 정보처리 기술이 엄청난 생산성 향상과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빌 게이츠는 지난 20년 동안 매 10년마다 정보처리 기기의 처리 능력이 1000배씩 늘었으며, 앞으로도 비슷한 속도로 발전을 거듭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보처리 기술의 발전은 목적했던 대로 다양한 산업분야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현대자동차에서는 자동차 생산량이 1990년대 초에 비해 2배 남짓 늘었다. 그러나 총고용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비율만 변했을 뿐이다. 현재와 같은 청년 실업이 단지 경기 변동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우려를 가지게 하는 징후는 이것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올해 사상 최고의 수출고를 올렸지만, 고용은 늘지 않았다. 생산성의 발전이 시민의 생활향상은커녕 오히려 실업의 증가라는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고용의 악화 또는 높은 실업의 지속은 또다시 국내 수요의 감소와 그에 따른 투자 감소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용의 감소와 그에 따른 실업은 개인에게 엄청난 재앙이다. 사람은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함으로써 사회적 분업에 참여한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하더라도 사회적 분업에 참여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어떤 사람이든 자기 자신에 대한 존경심을 유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실업에 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을 부양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런 상황은 개인의 자긍심을 바닥으로 추락하게 만들고 때로는 자살이라는 극단적 결정으로 내몬다. 그러나 실업은 결코 개인적인 재앙에 그치지 않는다. 실업과 고용의 악화는, 경제에 필요한 유효수요를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토대인 시민의 규모를 축소시키고 시민이 사회의 공공선에 무관심하도록 만든다.

높은 실업률, 특히 높은 청년 실업률의 문제는 이른바 정보기술의 발전에 따른 장기적 산업구조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이 변화에 따른 문제를 최소화하고 우리 민주주의의 토대를 지키기 위해 시급히 복지와 교육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갖춰야 한다.

최현 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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