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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1.10(수) 19:34

문제는 생활이다


온세계의 관심을 끌었던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조지 부시의 승리로 끝났다. 은근히 존 케리를 지지했던 많은 세계시민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승리했고, 지금 팔루자에서는 죽음의 망령이 떠돌고 있다. 슬픈 일이다.

세상의 슬픔에도 불구하고 부시가 왜 승리했는지를 분석하는 일은 말 많은 사람들의 술안줏감만은 아닐 것이다. 부시의 선거를 총지휘했던 칼 로브는 ‘전쟁’이 중요한 변수였다고 주장했다. 마치 클린턴이 ‘바보들아, 문제는 경제야’라는 슬로건으로 승리했듯이 이번에 부시는 ‘문제는 테러야’로 승리했다는 것이다. 다시 슬픈 일이다.

그런데 정작 슬픈 건 우리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미국 선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치권은 ‘문제는 개혁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주장만 하지 당장 일은 하지 않고 놀고 있다. 국무총리의 사과로 국회가 정상화된다고는 하지만 국회에 기대를 거는 국민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정말 슬픈 일이다.

사태가 이쯤 되면, 다시 한번 ‘문제는 정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구나 정치권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국회 밖에서의 물리적 충돌로 귀결되거나, 헌법재판소에서 관습적으로 해결되는 현상을 보면 문제는 정치임이 분명해 보인다.

한국 정치가 왜 이 모양인지에 대한 원인은 단순하다. 오랜 독재정치의 폐해가 누적되어 현재 한국 정치의 난맥상을 만들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한국 정치에 다른 서구 국가들에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곧 시민이 없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 한국 정치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익 중 특정 이익만을 대변하는 세력이 과대대표되고 있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해를 국회가 대변하지 못하니 정치는 정치인들의 이전투구의 장이 되고, 시민들은 무관심해지거나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는 일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시민이다’. 시민과 무관한 정치와 단절하고, 정치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치에서 무시되었던 시민이 복권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복권은 친절한 정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의 아토피를 치료하고, 부모들이 아이들을 안심하고 맡기고 일터에 나갈 수 있으며, 거리낌 없이 먹거리를 사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거리를 활보하며, 진학 걱정 없이 집 가까운 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전세금 걱정 없이 열심히 일할 수 있게 하는 정치가 시민들의 정치일 것이다.

일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정치에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정치, 곧 생활정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 정치의 미래는 여의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있는 것 같다.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협동조합에서부터 공동육아와 대안학교, 그리고 카센터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삶을 시민 스스로 만드는 주민자치가 이루어질 때 정치는 친절해질 수 있고 친절한 정치에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적극적 참여가 바탕이 된 주민자치가 이루어질 때 복마전 여의도도 시민의 놀이터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생활이다’. 다음 선거에서는 이런 구호를 내건 정당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시민의 꿈을 이루는 정당이 당장 가능하지 않더라도 지금 마포에서, 부천에서, 팔당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이웃에서 여의도를 대신하는 희망이 자라고 있다. 여의도에 지치셨다면 눈을 돌려 이웃과 만나고 친절한 정치와 만나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좋은 일일 터이다.

김정훈 성공회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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