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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1.22(월) 18:49

공부 못하는 아이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제도권 교육 안에서는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다. 고교 비평준화 지역 인문계 고등학교 중에서 가장 인기 없는 학교에 다닌다. 학부모를 만나보면 아이들이 공부 못하는 사연은 대략 세 가지로 정리된다. 머리는 있는데 공부에 흥미가 없어서, 초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잘했는데 중학교 때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다른 자식은 공부를 잘하는데 요 녀석만 머리가 나빠서 등이다.

제도교육을 하고 있는 교사가 보기에 우리 아이들이 공부 못하는 이유도 몇 가지로 정리된다. 공부 이외의 것들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 활동적이라 한 시간 이상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 자신의 꿈을 공부와 연관시키려 하지 않는다는 것 등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 아이들을 하루 종일 교실에 붙잡아 놓고 수업하는 것이 무척 힘들고 어려웠다.

그런데 아이들과 야영활동이나 현장체험 학습-요즘은 소풍, 견학, 수학여행 따위를 이렇게 부른다-을 가 보면 매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들이 열성적으로 능숙하게 해내는 일이 참 많다는 점이다. 며칠 동안 먹을 식단을 짜서 재료를 준비해 오고 요리해내는 모습, 처음 해보는 힘든 운동에도 서슴없이 도전하는 모습, 요모조모 따져보고 물건 고르고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 선생님 모르게 이벤트를 완벽하게 해내는 모습 등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교내 체육대회나 예술제를 하면 아이들은 눈부시게 싱싱하고 아름답다. 수업시간에 졸던 아이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준비해서 행사를 멋지게 치러낸다.

일상생활에서는 발랄하고 총명한 아이들이 공부에 관계된 부분에서는 소극적이고 위축된 모습을 드러낸다. 아픈 친구를 돌봐주고 발표를 못하는 친구일수록 열렬하게 박수 쳐주는 성격 좋은 아이들이 누구와 조금만 비교하는 말을 해도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이것은 아이들이 서열을 앞세우는 교육을 받으면서 그동안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 아이들은 고교 내신성적과 학교활동 위주로 대학 신입생을 선발하는 ‘수시모집 제도’가 있어서 자신의 학력보다 몇 단계 높은 대학에 많이 합격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대학에 가서 뒤처질 것 같지만 놀랍게도 우수한 성적을 자랑하는 아이들이 많다. 백화점식 고등학교 공부에서는 재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아이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전공 과목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다. 서울에 있는 일부 대학에서 우수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는 말을 듣고 조금 웃었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정해 놓은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이다. 학생을 평가하는 촘촘한 그물이 없는 학교는 교실을 벗어나면 똑똑하고 잘난 아이들을 공부 못하는 아이로 규정하고 기죽인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 자기 일을 가져도 공부 못해서 하게 된 일이라는 자격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사회는 공부 못하는 아이들보다 아이들을 제대로 평가해내지 못하는 어른들이 많아서 더 큰 문제다.오금희/고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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