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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과 밥과 생명의 순환을 알면/ 권성권


여름 방학 때, 몇 주간을 오가며 시골 어머니 일손을 도왔다. 서늘한 오전엔 밭에 거름도 주고, 논두렁풀도 벴다. 한낮엔 낮잠을 잤다. 그날 따라 너무 오래 잤는지, 불덩이 해가 차가운 바닷물에 식혀 들어갈 즈음에야 일어났다. 얼른 뒷밭으로 뛰어갔다. 날 보고 웃으시던 어머니께서는 날이 저물기 전에 여섯 포대 고추를 비닐 하우스에 널자고 하셨다. 다 부어 펼쳐 너니 하우스 밖이 컴컴해졌다. 어머니 손잡고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요리에 열중이셨다. 오랜만에 막내가 왔다며 돼지고기를 볶으셨다고 하셨다. 자취하며 김치와 밥만 먹어서 그런지, 똥돼지 맛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한 시간도 채 못 됐을까, 칙간(뒷간)을 향하게 됐다. 뿌지직! 한바탕 거나하게 쏟아냈다. 설사였다. 기름기가 뱃속에서 낯설었나 보다. 밑을 닦다 말고 앞을 보았다. 앉은 자세 높이만큼 두엄이 쌓여 있었다.

`두엄 쌓인 칙간', 생각해 보니 그곳에서 중학교까지 컸다. 어디 그곳에서만 컸던가? 윗집 칙간과 옆집 칙간을 번갈아 가며 컸다. 우리 집 칙간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식구들 때문에, 윗집과 옆집을 드나들었다. 그 집들은 식구들이 적어, 뒤를 길게 봐도 괜찮았다. 다음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근심(?)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절에서는 칙간을 `근심을 더는 곳'(해우소)이라 부르는지. 하지만 그런 느긋함도 잠깐이었다. 또 다른 근심덩이가 `똥자루'(굵고도 긴 똥덩이)처럼 딸려 있었다. 두 집 칙간을 제집 다니듯 하던, 내 모습을 지켜보시는 아버지의 대문 밖 모습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왜 남의 집에 `누런 돈떵이'(황금)를 퍼주는 게냐?” “예? 무슨 돈이요?” “네가 그 집에 쏟아 붓고 나온 누런 똥(황분) 말이야! 그 똥이 얼마나 귀한 줄 아냐?” 아버지는 계속 퍼부으셨다, 조선시대 법률엔, “재를 버리는 자는 곤장 삼십대였고, 똥을 버리는 자는 곤장 오십대였어.”(棄灰者丈三十, 棄糞者丈五十) 순간 내 얼굴은 똥 씹은 얼굴로 일그러졌다. “1900년대 초 수원에선, 상등품 똥재 한 섬에 30전이었어!” 나는 차츰 숙연해졌다. “너도 알다시피, 옆집 아저씨는 똥물로 살아난 사람 아니냐? 똥통에 푸른 대나무를 박아 그 속에 스며든 `똥물'로 피고름 섞인 다리를 고치셨잖아?” 나는 속말로만 “예, 저도 봤습니다” 중얼거리기만 했다. 아버지는 마지막 한 말씀을 덧붙이셨다. “훗날 똥이 밥이 되고, 밥이 생명이 되어, 또 다시 똥이 되는 순환 체계를 깨닫도록 해라!”. “예 …” 하고, 그때 대답은 했지만, 지금까지도 깨닫기엔 어설프다.

`중학교까지 컸던 그 칙간들'은 뒤로 한 채, 그날 저녁 똥의 소중함을 생각했다. 우연히 성서를 보게 되었는데, “똥을 볼 때는 땅을 파고, 돌아설 때에는 배설물을 덮어라(신23:13, 표준새번역)”, 옛 사람들의 혜안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자연 환경 보존엔 아랑곳하지 않고 `누런 동떠미'(금자탑)만 세우기에 급급한 우리 세대를 향한 경종임에 분명했다.

권성권/전북 전주시 진북2동·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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