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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간 2001년03월26일18시33분

    한겨레/ 사설·칼럼/ 난나이야기
    [난나이야기] 우리 삶속에 숨쉬는 희망

    아직 봄이 깊지 않아 학교 강의실들은 싸늘하고 어두웠다. 첫날 첫 수업부터 영문판 물리교재를 십여쪽 넘어가버리는 교수에게 기가 죽어버린 우리가 아직 바둥바둥 강의실 사이를 뛰어다니던 어느 날, 갓 사귄 친구와 나는 강의 중간에 있는 한 시간 동안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텅 빈 강의실을 둘 만이 차지할 수 있었다. 그네는 스케치북을 꺼내어 창가에 섰다. 부드러운 낮의 햇살이 강의실 안에 가득 차고 3층 강의실 눈앞에 있는 언덕의 누런 잔디는 오른쪽에서부터 까맣게 색이 변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친구는 조용히 언덕 위의 건물을 그리기 시작하고 출렁이며 색이 변하는 잔디밭 아랫길을 띄엄띄엄 비슷한 모양새의 학생들이 걸어다닌다. 깨달음의 순간. “아, 난 대학에 들어온 거구나.” 그림을 그리던 그 친구는 우리 다섯의 하나이다.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해 다섯이 된 우리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남학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학교의 여학생이라는 점, 음울한 시기에 공동체와 운동권이 강조되던 곳에서 낭만적인 개인주의자라는 점, 자연과학을 한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우리 중 나 혼자 미국에서 머물고 있는 지금, 예상치 않은 일로 부랴부랴 한국에 잠시 들어오면서 떨어져 있던 가족들과의 시간만을 생각했건만, 채 이틀이 지나지도 않아 수첩을 들어 오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건다. 그래도 3년 반이란 시간은 길어 친구들과의 연락이 쉽질 않다. 겨우 한 친구와 시간 약속을 하고 서울 강남역 뉴욕제과 앞에 선다. 누구에게 더 연락이 닿아 나올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두리번거리던 난 하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이렇게 다섯이 다 모이게 되다니.

    친구들도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사교육비를 말하고 조기유학과 이민에 관한 현상을 짚는다. 하지만 글쎄 그것 뿐만일까. 실제로 미국에서도 교육에 드는 돈은 많은 것 같아. 초등학교 전의 시설들은 모두 비싸고 아이들을 시설이나 개인에게 맡길 때 치러야 하는 비용도 엄청나니까. 그러니까 문제는 돈보다도 아이들 마음의 여유가 아닐까 싶어.

    처음 미국에서 일년 만에 귀국했을 땐, 김포공항 주변의 달라진 간판 하나하나까지도 눈에 들어왔다. 그 다음 일년 후에 한국에 들어왔을 땐, 담배를 피며 공중전화를 거는 사람 뒤에서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나?'며 생경한 심정이 되었다.

    예전과 무엇이 달라 보일까 은근히 기대를 하던 내가 다르게 느껴졌던 첫번째는 화를 내며 불친절한 모범택시 운전기사였다. 그 와중에도 한강과 어울린 산은 두드러지게 아름다웠던 것이다. 마을버스를 타니 사람들이 서로를 미워하는 것 같고, 지하철역 앞의 정류장에 세워진 차들은 그 주변을 걷는 사람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내가 미국에 너무 오래 있어 미국식 생활과 대비가 되는 건지, 아님 아이엠에프 이전의 내 기억 속에 있던 한국과 지금이 비교되어 보이는지. 자연은 아름다운데 사람들은 황폐하다.

    그러다가 동생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으러 신촌으로 가는 길에 급히 쌓아올린 사각 건물들 사이에서 오래된 기와와 판자집들을 봤다. 그들은 마치 보도 블록 사이에 피어난 잡초처럼 싱싱하였다. 그제서야 난 오래된 한국을 알아보았다. 끈질기게 뿌리를 뻗치고 있는, 바지런하고 서로를 즐기는. 그리고 보니 오래된 시장이 활기차게 건물 틈새에서 보인다. 우리는 너무 빨리 미래의 껍질을 생활에 씌우며 너무 쉽게 우리에 대해 실망하는 게 아닐까? 열린 생각을 하는 청소년들이 있고, 몸부림치며 탈바꿈하는 중년층이 있으며, 묵묵히 받쳐주는 노인들이 있다. 우리는 전쟁 속에 있는 것도 아닌데, 이민과 유학 유행 속에서 우리는 좀더 우리에 대해서 자신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이청진/<인터넷한겨레> 하니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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