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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간 2001년02월26일18시55분

    한겨레/ 사설·칼럼/ 난나이야기
    [난나이야기] 통일의 길, 상상력의 길

    남북을 잇는 철도가 복원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텔레비전에서는 통일한국의 경제를 이어나가는 다리가 될 것이라고 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조심스럽게 남북 화해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남북을 잇는 철도를 복원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길을 내어준다는 의미다. 길이란 뭘까? 인간은 늘 길을 통해서 사유하고 길을 통해서 상상의 날개를 펴고 살아왔다.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게 길이 아니라 우리 상상력을 열어주는 것도 바로 길이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의 길이란 어떤 의미였는가. 하루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집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한 길이었다. 현실에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길도 닫혀 있었다. 분단은 우리의 자유로운 상상의 길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만원 승객을 실은 지하철 안에서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한다. 비록 열차는 아니지만 만약 이 지하철이 답답한 서울을 빠져나가 평양으로, 시베리아로, 유럽으로 뻗어나가는 그런 상상은 나에게 지금보다 몇 배 더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내 몸은 비록 발 디딜 틈도 없는 지하철 안에 갇혀 있었지만 마음만은 늘 상상의 길을 따라 평양으로, 시베리아로, 유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좁은 공간 안에 갇혀 있었던가. 길이 단절된 공간 안에서 얼마나 편협한 상상만을 했을까. 분단이 우리의 길을 끊어 놓은 것처럼, 우리의 상상력도 극우와 극좌로 치우치게 하거나, 늘 닫힌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문화는 개개인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 때 창조되는 것이다. 그러나 공간이 단절된 채로 살아왔던 우리들은 늘 억압될 상상만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단절된 남북을 잇고 더 나아가 유럽으로 뻗어나가는 대륙열차를 타 본 사람들의 상상력과 좁은 지하철 안에서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상상력이 어찌 똑같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전 세계를 묶는 네트워크가 된다고 해도 길이 끊어진 곳에서 우리의 상상력은 닫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보수주의자들은 통일비용을 열심히 계산하며 득과 실을 따져보고 있지만 정작 새로운 세기의 가장 큰 경제적 가치인 우리들의 상상력에 대한 계산에는 눈이 어두운 것 같다. 왜 우리나라에는 100년, 1000년이 지나도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 문학작품이 나오지 않는 것인지, 왜 빌 게이츠와 스티븐 스필버그와 같은 뛰어난 창의력을 지닌 사람이 나오지 않는 것인지 푸념하면서도 정작 우리의 상상력을 가로막고 있는 분단의 벽을 허물고 길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70년대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논리만 내세운 채 획일적인 사고의 교육만 강조했다. 그 결과로 우리의 문화는 획일적인 상상력에 의해서 창조될 수밖에 없었다. 한 통치자의 파시즘적 욕망이 우리 전체 사회의 문화적 상상력을 억압했던 셈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이제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공간에서의 길을 트고, 우리 상상력을 자유롭게 뻗어나갈 수 있도록 통일의 길을 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100년 뒤 다시 스티븐 스필버그나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며 한탄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공간의 길을, 상상력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사람들이여! 요즘 세대들의 우스게 소리처럼 “뒷북은 그만 치자!”

    하준철/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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