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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간 2001년02월19일19시04분

    한겨레/ 사설·칼럼/ 난나이야기
    [난나이야기] 스타사랑 빛과 그림자

    미국에 머무르고 있을 때 내 일본친구가 거주하고 있었던 홈스테이집의 주인할머니는 10대부터 엘비스 프레슬리의 팬이라고 했다. 그 일본친구가 거주하던 2층의 방은 할머니가 몇 십년 동안 수집한 엘비스에 관한 소장품들로 가득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엘비스 벽지를 시작으로 엘비스 커튼, 엘비스 이불, 엘비스 침대커버까지 모든 것이 엘비스에 관한 것이었다. 심지어 욕실의 변기커버와 욕조에가지 `능글능글한' 엘비스의 미소가 찍혀 있는 바람에 욕실에 들어간 사람은 아니나 다를까 엘비스에게 모든 걸 `보여주어야만(?)' 입욕이 허락되었다! 정말 그 방은 한 마디로 `할머니에 의한, 엘비스를 위한, 엘비스의 방' 이었다.

    그 할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스타라는 것이 그러한 애정 가득한 팬들이 있기 때문에 빛날 수 있고 기억될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에게 아낌없는 애정과 한결같은 정성을 보내는 팬들을 보면 그 바지런함과 열정이 풋풋해 내겐 참 이쁘게 보인다. 아마도 그건 엘비스를 좋아했던 할머니의 옛날도 저렇게 시작되었겠지 하는 막연한 추측에서 비롯된 감상적 아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앞뒤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아직은 모르는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저렇게 맹목적인 애정표현도 허용될 수 있는 것 아닐까?

    물론 아니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요즘 팬들이 어떤 팬들인데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하냐는 질책의 목소리도 들린다. 사실 스타에 대한 팬들의 사랑이 단순한 소녀취향의 수줍은 짝사랑의 단계를 넘어서 `팬클럽'이라는 이름의 `조직'으로 화려한 탄생을 한 건 거부하고 싶지만 사실이다. 바야흐로 `한결같은 정성'도 기획되고 추진되는 시대다. 인기순위조사 투표를 조직적으로 준비하고, 스타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에까지 조직적으로 항의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조직적으로 스타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는 그네들을 보면, 스타도 조직된 것 같고 기획사도 조직된 것 같고 그래서 이제 저 순수한 이끌림도 상업화하고 조직화하는 것 같아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리고 우악스러워진 그네들의 과다한 애정표현에 나역시 동참해서 돌팔매질을 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극단적인 몇몇의 경우가 최근 두드러지긴 했지만 사실 팬들이 스타덤에 상응하는 수준의 `팬덤'을 형성한 건 긍정적인 요소도 많다. 팬덤은, 단지 스타의 동작과 스타일만을 따라하던 수동적인 객체에서 벗어나 스타의 사회적 동반자이자 행동의 전위대로서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수요를 이끌어낸다. 물론 빈곤한 철학과 과다한 열정이 만나 스타의 비도덕적인 행동에 어긋난 대응을 하기도 하는 팬덤이 최근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것도 일부의 문제이지 확대 해석해 팬클럽 전체를 호도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문제가 된 댄스그룹의 팬들 홈페이지에서도 소수지만 좀 더 의미 있고 이성적인 모임으로 거듭나기 위한 목소리들이 호응을 얻는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팬클럽에 가입해 열정을 표출하는 팬이 있다면, 반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스타를 매개로 그를 둘러싼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고 성숙의 눈을 키워가는 팬들도 분명 많이 있다. 이런 팬들의 목소리가 비록 작아서 들리지 않을지라도 결국은 진정한 아티스트와 올바른 팬덤문화를 만들어내는 데 든든한 한 축임에는 틀림없다.

    시간이 흐르면 스타는 점점 작아지거나 사라져 갈 것이고 팬들은 과거 스타가 차지했던 그 영역을 다른 삶의 빛나는 요소들로 채워넣을 것이다. 스타로 인해 시작된 열정이 나이가 들어서도 삶에 대한 그리고 사람에 대한 열정으로 그대로 이어질 수 있기를, 그리고 큰 목소리의 열정적인 팬들도 그리고 작은 목소리의 수줍은 팬들도 빛나는 스타에 상응하는 철학을 조금씩 키워가기를 바란다. 그들 중에서는 후에 엘비스를 좋아하는 할머니처럼, 나이가 들어도 스타에 대한 희미한 사랑을 매개로 흐뭇한 삶을 살게 될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스타로 인해서 조금은 더 빛난 삶을 살 수 있었던 그 시절보다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 애정 가득한 삶으로 말이다.

    최수영/서울 은평구 갈현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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