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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간 2001년01월29일18시54분

    한겨레/ 사설·칼럼/ 난나이야기
    [난나이야기] 사회학으로서의 의학

    타보 음베키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이 에이즈 대책회의에서 에이즈의 원인이 사회에 있다고 말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전 세계 의학자들이 반발하기도 하였지만, 이는 진실의 일면이 있다.

    `의학은 사회학'이라고 한 사람은, 루돌프 비르효(1821~1901)였다. 의대생 시절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의학도 사회학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차츰 의학을 이해하고 직접 환자를 대하면서 `의학은 사회학'이라는 명제가 주는 함축적 의미에 대해 절감하게 되었다. 왜 의학은 사회학이라고 하였을까? 하나의 예를 보자. 현재 전 세계에서 단일 증상 혹은 질병으로 최대의 사망자를 내는 질병이 무엇일까? 수많은 후배의사에게 물어 보았지만 정답은 아무도 몰랐다. `설사'다. 우리나라에서 정답을 아는 의사가 없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는 설사로 사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설사로 사망하지 않지만, 극빈국이 몰려 있는 아프리카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영·유아가 설사로 죽고 있다. 설사로 사망하는 이유도 참혹하다. 부모들이 분유값을 아끼기 위해 대부분 아주 묽게 분유를 먹인다. 묽게 탄 분유는 설사를 유발하고 영·유아는 설사로 탈수가 되어 탈진해 결국 사망하게 된다. 이러한 설사로 인한 사망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것이 세계보건기구의 A-용액, B-용액(Solution A, B)으로 보통의 물에 약간의 소금과 설탕을 탄 것이다. 이러한 간단한 용액으로도 살 수 있는 영·유아가 다만 몇 푼의 경제적 사정으로 어떤 질병보다도 많이 죽는 것이다. 분명히 의학적으로 치료하면 살 수 있는 설사 환자가 죽어야만 하는 원인을 찾는 데는 의학적 분석은 무력하기만 하다.

    한국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의학적으로 원인을 찾고 치료나 혹은 관리를 위해 대책은 있을지라도 사회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학이 제시하는 의학적 대책은 무력하다. 치매나 정신병, 장애자, 가정 폭력 등은 한 가정을 파괴하는 사회적 문제이며 사회적인 대책이 없으면 해결할 수 없는 질병이다.

    한 예로 가정폭력을 보면 의학의 사회적 성격을 알 수 있다. 공동체적 가족사회가 해체되면서 또 사회가 폭력적이 되면서 가정폭력은 나날이 늘어나고, 특히 젊은 저소득층이 밀집한 지역일수록 가정 폭력은 심각하다. 즉 사회-지역의 변화가 가져온다는 점에서 원인은 사회학적이다. 가정 폭력의 피해자가 병원에 와도 의료진이 할 수 있는 것은 단기적인 신체의 치료뿐이다. 결국 폭력을 원천적으로 막는 방법은 사회학적 접근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가정폭력이 늘어나는 것이 사회가 변화하기 때문이고 의학적 치료는 한계를 가지고 있음이 명확하듯이 의학은 사회학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의과대학 교육은 이러한 사회적 요인은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 것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의사가 존경은 고사하고 이른바 `칼(메스)을 든 도둑'으로 간주되는 것도 의사가 사회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하였기에 일어난 문제이다.

    그 근본원인은 의학교육에서 질병의 근본원인을 미시적·분석적으로 생물학에서만 찾고, 의사라는 지위가 주는 기득권에 안주하였기에 일어난 현상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좀더 거시적으로 질병의 사회학적 성격을 한마디로 말해주는 `의학은 사회학'이라는 명제로 동료의사와 보건 당국이 그야말로 사고의 전환을 하고 의학교육에서 의학의 사회학적 성격을 분명히 교육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김승열/하니리포터, 응급의학 전문의 antius@hani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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