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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간 2000년09월19일22시18분

    한겨레/ 사설·칼럼/ 따져봅시다
    [따져봅시다] 대북 식량자원 국회동의

    “경협기금 동의 불필요”

    “본격지원 꼭 동의거쳐야”

    지난 1일 끝난 제2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북한 당국은 식량난의 절박함을 호소하며 공개적으로 식량 100만t 지원을 요청했고, 이에 호응해 남한 당국은 상부상조의 원칙에 따라 식량을 차관으로 제공하는 문제를 검토해 추진키로 했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들이 대규모 대북 식량지원의 경우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고, 한나라당이 여기에 동조하면서 대북 식량지원의 국회 동의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현재 정부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남북협력기금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국회에는 사후보고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필수적인 공적자금처럼 대북 식량지원 역시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하는 것일까. 아태평화재단 전복희 선임연구위원과 연세대 최평길 교수(북한학)를 만나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현 파행 국회를 감안하면 남북협력기금을 통해 때를 놓치지 않고 북쪽에 식량을 지원하는 게 맞다. 정부가 식량 지원을 경제협력 차원에서 풀어가겠다고 밝힌 만큼 더욱 그렇다.”

    “적대국에 대한 원조, 그것도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차관 형태의 대규모 경제원조는 반드시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한다.”

    전복희 선임연구위원과 최평길 교수가 대북 식량 지원의 국회 동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달랐다. 전 연구위원은 야당이 대북 정책의 기본방향에 대해 협조하기보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이 제기하는 국회 동의 요청은 국회 토론을 통해 국민적 합의와 공감대를 끌어내기보다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 성토에 주안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획기적 진전, 개성공단 및 경의선 연결 등 경협의 본격화, 군사회담 등은 남쪽보다는 북쪽에 현저히 부담이 되거나 남쪽 요구가 반영돼 펼쳐지는 사업이다. 체면이나 자존심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북쪽은 남쪽의 요구에 이례적으로 신속히 반응했다. 이런 선의에 대해 남쪽도 북쪽의 체면이나 자존심을 손상시키지 않는 방향에서 신속하고 통크게 화답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 최 교수는 1995년 쌀 15만t을 제공할 때와는 달리, 지금은 온갖 대북 경제적 지원이 본격화하는 시점인 만큼, 국회 동의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남북경제협력기금은 소규모 프로젝트 등에 적합한 만큼, 이참에 대북 경제원조 관련 특별법 제정 등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한다.

    최 교수가 보기에 대북 식량지원의 국회 동의 문제는 정치권에게 파행 국회 정상화의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 “국회 동의를 거친다고 해도 거부되지 않을 것이다. 겨울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북쪽이 지원을 호소한 만큼, 어느 정당도 이 사안을 외면할 수 없다. 어떻게든 타협을 볼 것이다”라고 최 교수는 전망한다. 거부된다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민에게 호소하는 수밖에 없으며, 정부·여당은 즉시 지원 규모 축소, 쌀과 잡곡의 비율 조정, 남한 시민·사회단체의 식량 배분 과정 감시 등의 내용을 담은 수정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다시 논의에 들어가면 된다고 한다.

    전 연구위원은 최 교수의 이런 생각을 너무 낙관적이라고 바라봤다. “1970년 동-서독 정상회담 이후, 서독 정치권은 대동독 정책의 기조와 방향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갔는데, 우리 정치권은 오로지 흠잡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국회 동의 문제는 그 원칙의 올바름과 관계없이 남북 관계 진전의 발목을 잡는 쪽으로 이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전 연구위원은 “남북 관계에서의 `주고 받기'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결국은 대통령의 통치권적 결단과 집행을 필요로 한다”고 지적한다. 남북한에서 이제까지 성공했거나 상호이익이 되는 협상은 양쪽의 책임있는 전권대표들의 비밀스럽고 책임있는 결단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분단국 사이의 거래가 보통국가들 사이의 거래와는 다른, 역사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 매우 민감한 측면들이나, 양쪽 정부의 자존심과 체면 문제를 함축하고 있는 만큼, 모든 개별협상 결과에 대한 국회 동의 문제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반면 최 교수는 국회 동의가 대통령의 리더십을 강화시키는 절차라고 지적한다. 전쟁 개시 뒤 대통령이 상원의 사후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는 미국처럼, 대통령의 결단에 대한 국회의 견제와 발언권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의 논리와 힘을 제압하는 것은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정치력에 달려있다고 최 교수는 말했다.

    한편 최 교수는 대북 지원 식량은 주민들에게 직접 전달돼야 한다며 이를 남한 시민·사회 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감시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대에는 절대 배분돼서는 안 되며, 설혹 배분될 경우 감군 등 군비 축소와 연계시켜야 한다는 게 최 교수의 생각이다.

    전 연구위원은 이에 반대한다. 군비 축소는 별개로 다뤄져야지, 식량 지원과 연계될 의제가 아니라고 한다. 이 역시 그동안 대북 정책의 발목을 잡아온 이른바 `상호주의'의 재판이라는 얘기다. “정전협정 당사자가 북한과 미국, 중국인 상황에서, 남북이 평화협정을 맺고 미국과 중국이 이를 승인하는 이른바 `2+2' 방안이 현 정부 아래에서 이전에 비해 큰 힘을 얻고 있는 것도 결국 지금까지의 대북 정책이 보이지 않게 남쪽의 교섭력을 높여왔다는 증거”라고 전 연구위원은 말했다. 조준상 기자sang21@hani.co.kr


    대규모 차관형식 국회심의는 당연

    민주노동당은 지금까지 북한의 식량난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더욱이 최근 상황에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것은 남북간 평화를 공고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통일의 준비라는 차원에서도 의미를 가진다. 또한 정부는 국제사회가 북한 식량난 해결에 적극 동참할 것을 호소함으로써, 북한이 식량난을 타개하는 데에 실질적인 기여를 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대북 식량 지원을 정부가 국회 동의를 거치지 않고 처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대북 식량 지원의 경우 대규모 재원이 소요되는 차관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국회 심의를 거쳐야 하는 사안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식량 구매 재원이 납세자인 국민으로부터 나오므로, 국민의 대표의 의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정권 차원의 거래가 아닌, 실질적 통일과정이 되기 위해 국민 의견 수렴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나라당의 `심의' 의견이 식량 지원을 축소·제약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나, 원칙대로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첫째, 다른 안건과 마찬가지로 민주당과 자민련이 공동으로 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음에도 국회 `심의'과정을 피하는 것은 통일정책의 정당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정부 임의로 대북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에도 정부 임의로 대북 정책을 결정하도록 해야 할 것인가. 셋째, 통일에 대한 공론 형성 역시 중요한데, 이를 위해선 한나라당 등 수구세력의 의견이 국회 수준에서 공론화해 국민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의 식량난은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는 하나, 조속한 지원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와 정치권은 소모적인 논쟁으로 시기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국회 동의를 못 얻는다면 남북협력기금을 통해 때를 놓치지 않고 필요한 식량을 지원하되 즉시 국회 동의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이는 수구세력의 정체를 폭로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정택상/민주노동당 정책부장


    대북정책중 식량차관만 동의는 부적절

    식량 차관을 포함해 현재 남북의 합의사항은 총체적 대북 정책 전반과 관련된 전략적 패키지의 일부라는 성격을 띤다. 어떤 점에서 식량 제공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에서 가장 핵심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남북 모두가 실천해야 할 그밖의 다양한 사안과 밀접히 얽혀있다. 식량 제공만 따로 떼어내 국회 동의를 받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남북 정상회담도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 물론 국회 동의나 비준을 받아야 할 사안이 생길 수도 있다. 남북 사이에 조약이나 협정을 맺거나 대북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법을 제정 혹은 개정하는 경우이다. 헌법 개정과 같은 중대 사안은 국민투표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이런 것들은 장기적으로 대북 정책 전반을 구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식량 지원은 그 자체로 추진될 필요도 있다. 남한의 경제 상황이 아무리 나빠졌다고 해도 국민이 굶주리는 단계는 넘어선 지 오래다. 식량 제공은 북한 다음 세대의 신체적 보호를 위해 시간을 다투는 일이며 민족의 다음 세대 운명과 직결된 생명선이기도 하다. 국민 여론이 소극적이라면 정부는 의연히 설득할 자세를 갖춰야 한다. 남한에선 시민에게 최저 생활수준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생계지원 대책이 시행중이다. 이제 남북 관계 개선에 맞춰 민족 생존 차원에서 `민족 최저한' 나아가 `민족 복지' 개념을 설정해야 할 시점에 이르고 있다. 국회 차원의 합의가 필요하다면 이 정도의 논의 단계에 가서일 것이다. 대북 정책 집행에서 민주적 원칙을 지켜야 함은 당연한 요구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다음 선거에서 대북 정책에 대한 심판을 통해 판가름날 일이다. 물론 정책의 타당성에 대한 논의는 국회에서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야당에 정보, 자료나 설명도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회가 하루빨리 정상화해야 하며 가능하면 초당적 협의기구 같은 것을 둘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정책 수정이나 완급 조절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대북 정책에 대한 높은 지지에도 그것이 내정 실패를 은폐하는 식으로 활용되지 않았느냐는 의심이 크다. 현 시점에서 거꾸로 내정 문제가 대북 정책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내정 문제는 그 자체 논리로 시급히 해결돼야 한다.

    서동만/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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