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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9.05(일) 19:12

찢어진 가족사진의 복원


하루 하루가 모여서 인생이 된다. 그리고 한 사람의 개인사와 가족사가 모여서 역사를 이룬다. 비겁하고 수치스러웠던 어느 하루, 피폐하여 방황했던 한 시절을 빼놓고 그 사람의 개인사를 말할 수 없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일제시대와 해방, 6·25와 분단 50년을 합쳐 100년의 근현대사를 지나오면서 우리 민족은 저마다 잊고 싶은 가족사와 역사를 갖게 되었다. 그 고통스러웠던 기억들, 파편으로 흩어져 있는 기억과 사건들을 수습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역사를 쓸 수 없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 청산과 과거사 규명작업에 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와서 잊고 싶은 것들을 들고 나와서 이로울 것이 뭐냐는 것이다.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마도 참으로 깊고 깊은 상처를 내면에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토만 동강난 것이 아니다. 집집마다 형제, 부부가 좌우로 갈리고 남북으로 찢어졌던 시절을 우리는 살았다.

어렸을 때 심한 폭력을 당했거나, 외상은 없지만 정신에 깊은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그 기억을 지워버리려 한다. 정신과에선 그 기억을 되살려 정면으로 응시하도록 도와주어 극복하게 하는 치료를 한다. 그 상처를 헤집지 않고서는 병을 치료할 수 없어서다. 그러나 상처가 깊을수록 환자는 완고하게 기억해내지 않으려 하고 망각의 늪에 가두려 한다. 우리 민족은 친일과 전쟁, 분단, 좌·우익이라는 문제로 인해 뜨겁디 뜨거운 집단적인 화상을 입었다. 남이나 북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에 가까이 가면 불꽃이 튄다.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엄청난 화상의 경험이 있는 것이다. 전국민적으로 겪은 집단적인 상처를 헤집고 들여다보지 않는 한 그 화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고통스럽겠지만 헤집어 내야만 치유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과거사를 규명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보훈처가 독립운동을 한 좌익 활동가의 명단을 확보하고 심사를 시작했다는 것은 우리 국민의 집단적 화상을 치유하는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세월 가족들이 이땅에서 받았던 상처와 핍박을 생각하면 아버지가, 삼촌이, 할아버지가 비록 좌익활동을 했지만 독립운동을 했다고 떳떳이 주장하고 자료를 모은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상처가 너무 깊은 사람들은 아직도 입을 다물고 있다. 그 불에 델 것 같은 기억에 두렵기 때문이다. 핏덩이를 남기고 사라진 부모, 할아버지의 친일행적 때문에 아버지 세대의 6남매와 그 배우자가 모두 북으로 가고 20여명의 아이들만 남은 가족, 가족사진 하나 없이 홀홀단신 남으로 내려와 가족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는 아버지를 둔 이웃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삼촌이나 고모 사촌을 이야기 할 때마다 숨을 죽였던 어른들을 기억한다. 낮말은 새가 등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소곤댔다. 누렇게 바랜 사진 속의 그들은 지금 우리의 아들딸보다 더 어린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얼굴들에 이름을 찾아주고 가족의 사진을 복원해 냄으로서 개인과 가족을 치유하고 역사도 치유해야 한다. 통일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질지는 모른다. 통일이 되면 역사교과서는 다시 써야 할 것이다. 북쪽의 역사도 일방적이고 남쪽도 온전한 역사책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과 남의 역사를 합쳐도 하나의 완벽한 역사책이 될 수 없다. 북쪽은 북쪽대로 입맛에 맞게 역사를 기술했고 남쪽은 그동안 정권이 여러번 바뀌어 역사를 폭넓게 보려는 노력이 진행되었지만 온전한 역사책을 갖고 있지 못하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깡그리 남쪽에 있다 하여 북한에서 벌어진 지난 50년의 역사를 통째로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폭넓게 보고 북의 역사와 좌익의 역사까지 우리것으로 만들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개인사와 가족사의 복원이고 역사의 복원이고 우리 민족이 치유되는 길이 아닐까.

김선주 논설주간 sunj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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