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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6.13(일) 16:35

로그아웃된 세대


젊은이들이 주로 보는 잡지를 뒤적이다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 주일의 운세’나 볼까, 잡지의 마지막 장을 펼치고 자축인묘 … 쭉 내려가 ‘해’에 이르니 아뿔싸 47년 돼지띠가 없다. 59년 돼지띠까지만 나와 있었다. 잡지사에 전화를 걸어 47년생 애독자라고 항의를 할까, 싱거운 생각을 해보았다. 전에 어떤 코미디언이 자주 쓰던 ‘너희들은 나가 놀아라’라는 답변을 들을까봐 낄낄 웃음이 나오는 한편에서 서늘한 바람소리가 났다.

17대 국회의원의 83%가 50살 이하이고, 총리 후보로 지명된 이해찬 의원은 52살이다. 그가 지명되자 김근태 의원이 어떻게 그 밑에서 장관을 하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몇몇 장관의 나이가 거론되었다. 어차피 내각이 총리보다 어린 사람들로 재편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쉰살의 김병준씨가 임명되자 그러잖아도 386세대에 둘러싸여 있다는 노 대통령 주변이 전부 50살 이하가 될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참여정부 들어서 우리 사회의 권력 중심부가 확실히 재편되고 있다. 국회의원들도 초선이 3분의 2를 차지한다. 크게 말해 신인이 대다수다. 여론 주도층의 나이가 확연히 어려졌고, 정책결정 과정에 젊은 이들이 포진해 있다. 지금 기업들의 정가와 국회, 관료사회를 향한 인맥 만들기가 한창이라고 한다. 권력 중심부의 나이가 적어지면 당연히 그들과 상대해야 할 기업 임원들이나 사회 전반의 의사 결정권자들의 나이도 젊어질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기득권을 누렸던 층의 물갈이는 반가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참여정부 들어서도 세대교체는 확실히 된 것 같지만 학벌주의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몇몇 특이한 이력이나 학벌 소유자도 눈에 띄지만 명문대 명문고 출신이 포진하고 있는 것은 여전하다. 자교 출신 국회의원 축하연을 대대적으로 연 서울대학은 115명을 17대 국회의원으로 배출했다. 대학원까지 합치면 143명이라니 절반이 서울대 출신이다. 여성 국회의원의 증가로 이화여대는 10명을 배출했고, 고등학교별로도 어느 학교가 이번에 제일 많이 배출했다느니 끼리끼리 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어떤 여고에선 7명을 배출했고, 사위급인 국회의원 부인이 그보다 갑절이나 많다고 자랑이다. 늘어난 것이라면 재야니 운동권이니 하는 출신 분류가 새로 생긴 것이다. 참여정부 들어 권력 실세들을 많이 배출하여 ‘관변‘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민변에 기업들이 고문변호사를 맡아 달라는 제안이 심심찮게 온다고 한다. 이런 분류들이 몇 해 안에 새로운 기득권이 될 것을 생각하면 진정한 물갈이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6·15 남북 정상회당 당시 방북한 언론인들에게 고향 떠난 유교가 타향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고 말했단다. 장유유서 따지기는 남북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30대의 재벌오너가 탄생해도 어린 사람 밑에서 어떻게 내가 일을 하느냐는 임원은 없다.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시절 그 서슬푸른 기세에 눌려 그 밑에서 일하는 것을 거부한 사람은 없었다. 그것이 절대권력이기 때문이다. 사시 몇 기가 높은 자리에 오르면 그 이상은 줄줄이 옷을 벗어야 하는 풍토는 참으로 기이하다. 30년 동안 군사정권이 만들어낸 군사문화와 유교문화가 합작한 왜곡된 전통이다. 참여정부의 내각이나 사법부 등 사회 전반의 이러한 전통 아닌 전통과 문화는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새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나이 어린 장관 밑에 나이 많은 차관이 있고, 더 나이 많은 국장이 있을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 진정으로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사회일 것이다.

후배에게 오늘의 운세에도 안 나왔다며 툴툴댔더니 인생 말년에 ‘이주일의 운세’에서 로그아웃된 것 가지고 웬 호들갑이오, 400만명의 신용불량자가 우리 사회에서 로그아웃되었고, 30~40대가 직장에서 퇴출되는 세상이라며 싱글거렸다. 그만 퇴장하라는 면박으로 들렸다.

김선주 논설주간 sunj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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