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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3.21(일) 18:18

자업자득의 교훈


△ 김선주 논설주간

박관용 국회의장은 참으로 명언을 남겼다. 국회의장석 앞에 눈물을 흘리며 죽 돌아서 있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을 향해 그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자업자득이라고 두번 소리쳤다. 탄핵안이 통과된 것은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이라는 선언이었다.

탄핵안이 통과된 것은 사과를 하지 않은 노 대통령의 자업자득일 수 있다. 사과를 했어도 그게 사과냐 하고 밀어붙였을 수도 있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자업자득이다. 그러나 탄핵 후 자업자득의 화살은 곧바로 탄핵을 통과시킨 193명의 국회의원과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으로 향했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자신이 뱉은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예언처럼 들어맞아 자신에게 꽂힐 줄은 몰랐을 것이다. 자업자득의 대가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가슴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탄핵안 통과 후 동료는 ‘저들이 폭탄을 삼켰다’ 했다. 총선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한나라당, 민주당 출마자들은 시한폭탄을 가슴에 품은 것 같은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전통적인 텃밭에서조차 표를 얻을 수 없는 민심의 변화를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다간 다 죽는다는 말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명함도 못 들이미는 상황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계속 탄핵안을 만지작거리며 부패무능정권이다 하며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대통령을 압박했으면 이번 총선은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금까지의 각종 여론조사는 열린우리당이 제1당이 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일 것이다. 자업자득이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 위력이 있다. 칼을 뽑아 사용해 버리면 칼의 위력은 사라진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당시 빈사상태였다. 차떼기 정국을 교묘하게 탄핵정국으로 돌림으로써 대표로서의 권한을 되찾기는 했다. 보수언론에 의해 미스터 쓴소리라는 평가를 받는 데 고무되어 탄핵안 상정에 앞장섰을 때만 해도 조순형 민주당 대표는 ‘혹시 내가 대통령’이라는 기대감을 가졌을 수도 있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탄핵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가 탄핵이 이루어지자 잘 되었다며 탄핵열차에 올라탔다.

한나라당의 대표경선에 나온 후보와 출마자들 사이에서 탄핵취소가 공론화되고 있고 민주당은 탈당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국민에게 사죄하고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이자고까지 한다. 자업자득의 교훈을 얻은 것일까. 일을 저지른 최병렬 대표는 수습할 위치에 있지 않고, 조순형 대표는 한번 죽지 두번 죽느냐며 물러설 뜻을 보이지 않는다. 김종필 총재는 대통령 한번 혼내주자는 것이었다며 물러섰다. 자업자득의 교훈을 딛고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사태를 수습하는 후보가 한나라당 대표가 되느냐, 그냥 밀어붙이며 잘못한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후보가 당대표가 되느냐에 따라 한나라당의 미래는 결정될 수밖에 없다.

금요일 밤 문화방송이 방영한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신강균의 ‘사실은’은 핵폭탄 같은 위력을 발휘했다. 보수언론은 그동안 국민들의 탄핵반대 여론을 방송의 편파방송 탓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실은’은 쿠데타적 상황이 일어났을 때마다 보수언론이 어떻게 언론권력을 이용하여 여론을 조작하여 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누가 편파보도를 했는지를 국민들은 이제 안다. 정치권도 앞으로는 보수언론의 ‘훈수’를 잘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에 영향력을 미치며 정국을 쥐락펴락한 그들의 위세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미 약화되었다. 자업자득이다. 교훈 반성 글쎄다.

진정으로 자업자득의 교훈을 얻은 것은 국민들이다. 민주주의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현실에서 구체화되는 것인지를 알게 된 때문이다. 안이하게 국회의원을 뽑으면 그 결과가 국민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인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된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는 큰 걸음을 내디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총선은 국민들이 자업자득의 교훈을 실현하는 선거가 될 것이다.

김선주 논설주간 sunj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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