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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2.22(일) 18:37

‘키워줬더니 …’는 이제 그만


배우 박중훈이 〈태극기를 휘날리며〉로 한창 뜨고 있는 장동건을 만났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하늘 같은 대선배인 안성기 이름을 제치고 먼저 소개되어 황공하고 당황했던 박중훈은 이제 자신의 이름보다 장동건이 먼저 소개되는 날이 올 것을 예감하고 있다.(〈씨네21〉 440호 박중훈-장동건 대담에서) 밑에 있던 사람이 자신을 뛰어넘어 위로 올라가는 것, 자신이 손을 잡아 길을 가르쳐 줄 때 천방지축으로 미덥지 못했던 인물이 인정받고 크는 것을 보는 것은 씁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순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억울함과 분노에 가득찬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제 핀 꽃은 오늘 지고 오늘 핀 꽃은 내일 진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다.

1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미덥지 않아했다. 경쟁자인 이회창 후보와 비교해 볼 때 그의 경험이나 경력은 일천해 보였다. 기득권층인 학벌 좋고 출신 좋은 보수층은 물론, 민주화 운동 세력들도 마찬가지로 느꼈다. 그들이 민주화 운동으로 감옥에 가고 고문받는 동안 고시공부 끝에 변호사 하다가 어느날 민주화 세력의 구심점이 되어 대통령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민주화 운동의 백전노장들은 대통령직을 도둑맞은 것처럼 어이없어했다.

지난 1년 동안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취임 초 젊은 검사들과의 대화 자리는 긴장감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했다. 신선한 느낌도 주었지만 대통령이 왜 저런 짓을 하느냐, 또 젊은 검사들이 저래도 되는 거냐 하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검사들과의 대화는 대통령과 검찰 모두 이긴 윈-윈 게임으로 결론이 났다. 대한민국 건국사상 검찰이 이렇게 국민들의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 대통령 자신이 시나리오를 썼다고 해도 이렇게 정교할 수 없을 정도로 노 대통령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치판이 나아가고 있다. 노 대통령의 지난 1년 업적 중 국민들이 가장 높게 꼽고 있는 것은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다. 대선수사로 촉발된 한나라당의 자중지란과 민주당의 분란은 열린우리당에 반사이익을 주고 있다. 대통령은 과거 인물을 중용했고, 코드가 안 맞는다고 공언한 김우식 연세대 총장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강한 카리스마는 엿보이나 참여정부의 정책과 걸맞을지 의심스러운 이헌재씨를 부총리로 임명했다. 그를 지지한 층은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이 무엇이냐고 질타하고 있지만 노 대통령이 이런 반발을 예상 못했을리 없다. 안정적으로 정국을 이끌어 간다는 이미지를 심으려는 계산된 총선 올인작전일 것이다.

총선에서 어느 당이 제1당이 될지 모른다. 각종 여론조사는 부동층을 40~50%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10년 동안 꽁꽁 숨겨둔 전두환 비자금의 실체도 밝혀낼 수 있고, 차떼기는 물론 시디와 채권이라는 안전한 불법자금 수수도 들통이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검찰이 대통령 주변 수사에 한계를 그어놨는지 이심전심으로 하는지는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한 뒤 밝혀질 수밖에 없고, 검찰이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만한지도 그때 가면 알 수 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합당해 노 대통령을 탄핵하는 방안도 나오고 있지만 가능한지 의문이고, 국민적 호응을 얻을 것 같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자금과 관련해 피고 처지라고 했지만 안정적으로 정국을 이끌어 갈 자신이 생긴 것 같다.

세상엔 자신이 씨를 뿌려 물을 주고 가꾸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따 먹을 수 있는 경우는 없다. 씨뿌리는 사람 가꾸는 사람 열매 먹는 사람이 다른 게 세상 일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는 모호하다. 당 대표로 거론되는 사람들 모두 고만고만해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고 당 정체성을 확고히해 구심점을 찾아낸다면 누구든지 당의 간판스타로 떠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누가 키워주는 게 아니라 결국은 스스로 크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선주 sunj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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