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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1.25(일) 18:24

설연휴에 생긴 일


설날 저녁, 노름을 했다. 두시간만 하기로 했다. 나이치레들을 하느라 간이 나빠서, 당뇨가 있어서등, 술을 입에 못대는 친지들 때문에 벌인 판이었다. 돈대신 빨간 구슬과 노란 구슬로 하는 것이었지만 두시간이 다되가는데 내앞에 구슬이 떨어지니 약이 올랐다. 마지막 판은 가진 구슬들을 전부 걸었다. 구슬이 떨어지면 물러나기로 했지만 옆사람의 구슬을 구걸하여 게임판에 간신히 붙어 앉았던 내가 완승했다. 구슬은 모조리 내차지가 되었다. 환호를 하고 떠들어댔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친구나 친척들이 모였을때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지 않는 한 얼굴 붉힐 일이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이다. 그저 웃고 즐기고 농담따먹기를 하다보니, 세상근심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순간을 즐기며 사는 것이 인생의 참재미가 아닌가 싶었다.

민통선 안쪽, 최전선에서 복무중인 둘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연말에 한상자 빼곡히 부쳐준 책을 잘 받아 동료들과 돌려보며 연휴를 잘 보낸다고 했다. 다음주부터 동계훈련뛰니까 연락이 없어도 걱정하지 말라 했다. 추위에 힘들텐데 부모걱정을 해주니 느긋해졌다. 밖은 엄동설한인데 등따숩고 배부르고 가족이 무탈하니 행복하다고, 살만하다고 여겨졌다.

다음날 비보가 날아왔다. 가장 친한 친구의 동생이 죽었다는 것이다. 언론인출신으로 소비자 운동과 시청자 운동을 열심히 했던, 여성계에선 꽤 알려져 있던 인재였다. 신장이식 수술을 받고 이주가 지났고 경과가 좋아서 퇴원을 하루 이틀 앞두고 있었다. 연휴가 시작되는 20일 밤에 갑자기 심상치 않은 기색을 보이더니 23일 아침에 세상을 떴다. 10년동안 6백건의 신장이식수술을 했다는 의사는 수술후 패혈증으로 사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당혹스러워 했다. 뇌사자의 신장 한쪽은 서울대 병원으로, 한쪽은 친구동생에게 갔는데 그쪽 이식자는 아무 탈이 없었고 재벌병원에 간 친구동생은 죽었다. 그동안 병원의료진의 부적절한 행동에 불안해했던 가족들은 의료사고의 가능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패혈증은 주로 병원에서 감염된다. 항생제에 내성이 강한 병균들이 득시글 거리는 병원에서 수술환자들에게 감염이 된다. 오한이 나고 고열증상을 보이면 긴급히 항생제를 투여하면 구할수 있지만 시간을 끌면 치사율이 높다고 한다. 간호사는 의사를 부르지 않았다. 물을 많이 먹고 배를 꾹꾹 눌러서 소변을 빼라고만 했다는것이다. 친구동생은 소변이 안나와서 몸이 풍선처럼 불어난채 고통속에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숨졌다고 친구는 통곡을 했다. 몸이 두배로 불어서 관을 큰 것을 맞춰야겠어라며 질질 울었다. 모든 과정을 지켜본 아들은 병원쪽의 무성의와 시의적절한 치료행위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부검을 해서 사망원인을 캐겠다며 벽을 쳤다. 설이나 추석등 연휴에 의료사고와 사망이 많은 것은 위급한 경우에 간호사들이 의사들을 부르는 것을 꺼려 적적할 치료기회를 놓쳐서라는 조문객들의 수근거림이 사실처럼 느껴졌다. 6백건 가운데 처음 있는 사망사건을 놓고 원인을 규명하여 다시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는 병원쪽의 노력이 없이 책임회피로 일관한다는 것은 참으로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인생이 허망해졌다. 손아랫사람의 죽음은 가슴이 저리다. 하늘은 잿빛이고 날은 더 차고 목청을 높여야 할 현실은 우울하게 다가왔다. 긴밤을 병원에서 보내고 출근하니 군복무기간 단축을 검토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비난기사가 떠올랐다. 지등 따숩고 배부르니 뭐라고. 군복무기간이 1년이면 어떻고 1년반이면 어떤가. 무조건 시간때우기로 잡아두면 그만인가. 훈련강도와 질이 문제이지. 국회의원 아들들의 병역면제율이 일반인의 열배라구 그렇게 국토방위를 염려하면서 자식들은 군대 안보내놓고 군복무 기간 단축은 천부당만부당하고, 이라크 파병은 당연하다니...군복무를 효율적으로 생산적으로 하는 방법을 한번도 고민해 본적도, 고민해 볼 필요도 없었으면서 입만 살아가지고....절로 욕이 나왔다.

모든 것이 정치이다. 정치이야기에 날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그저 좋은게 좋은 거지는 없다. 얼굴 붉히기 싫어서 논쟁과 비판을 피해갈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내등 따숩다고 히히거린 하룻밤이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논설위원 sunj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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