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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한비야칼럼 등록 2004.09.29(수) 18:31

네팔 반군과 구호식량 배분

여기는 네팔 중서부 주물라 지역. 사방이 4천미터급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가장 가까운 도시도 걸어서 나흘 거리. 현실적인 교통수단은 비행기뿐이다. 이곳에는 전기도 전화도 없다. 위성전화가 있지만, 수신 상태가 몹시 나빠 일주일에 두 번만 카트만두 본부와 연결되어도 대만족이다.

저녁 7시 통행금지는 철저하다. 덕분에 매일 밤, 일찍 귀가하여 촛불 아래서 밥을 먹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일기를 쓴다. 네팔 직원들과 화덕에 둘러앉아 우유 듬뿍 든 홍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저녁시간은 얼마나 한가롭고 정겨운지.

그러나 네팔의 현실은 절대 낭만적이지 않다. 사오십년 전부터 마오쩌둥 사상을 따르는 소위 마오이스트와 왕이 이끄는 정부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2001년, 비렌드라왕과 그 일가가 몰살당하는 사건을 계기로 더욱 악화되었다.

나는 마오이스트들을 그저 소규모 게릴라 집단으로만 여겼다. 알고 보니 이들은 놀랄 만큼 치밀한 행정 및 통치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전국에 주민투표로 선출된 지역대표가 있고, 교육·보건·사회보장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2만여명의 정예 군대도 있다. 전국 75개 행정지역 중 세 곳만 빼고는 정부군보다 반군의 영향력이 훨씬 크다고 한다. 특히 중·서부 산악지역은 도청 소재지에서 30분만 나가도 정부의 행정력과 군사력이 전혀 미치지 못한다.

주물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낀 9만명 주민들만 죽어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식량 부족이다. 일년 농사로 반년도 살기 힘든 식량을 쪼개, 반군들에게 각종 명목으로 상납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반군들이 한 집에 한 명씩 의무적으로 입대나 입당을 강요하고 있어, 한창 일할 젊은이들이 잇달아 고향을 떠나면서 식량 부족을 가중시키고 있다.

나는 이곳에 두 달 동안 식량배분을 하러 왔다. 정확히 말하면 현장에서 실무를 배우면서 업무도 수행하는 현장학습 및 파견근무다. 월드비전은 세계식량계획(WFP)과 함께 지난해 12월부터 이 지역 3500가족, 약 2만1천여명에게 556톤의 쌀을 배분하고 있다. 무상배분이 아니라 주민들이 마을의 학교나 관개수로 등 공공시설을 보수 혹은 증축하고 그 품삯으로 식량을 받는 (푸드 포 워크) 프로그램을 통한 배분이다. 대략 일주일 임금은 40킬로그램 쌀 한 포대. 여섯 식구 한가족이 감자나 옥수수, 조 등과 섞어 먹으면 두 달 정도 견딜 수 있는 양이니 큰 도움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무실에서도 식량 배분소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주민들이 보인다. 모두들 얼마나 즐겁고 설레는 표정인지. 이제 저 쌀 포대를 지고 집에 가서 솥단지가 넘치도록 하얀 쌀밥을 지어 식구 수대로 배불리 먹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배부른 일일 거다. 저 싱글벙글 좋아하는 얼굴들, 정말 여러분께 보여주고 싶다.

그러나 순조롭게 보이는 식량배분이 사실은 무척 힘겹게 진행되고 있다. 읍내에서는 정부군의 명령에, 현장에서는 반군의 결정에 따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정부군이 반군지역 주민에게 쌀을 주는 것은 결국 반군을 돕는 일이라며 배분을 중지시키고, 어느 날은 반군들이 우리를 미국이나 네팔 정부의 끄나풀로 의심하며 지역 내 활동을 금지한다. 외줄을 타는 심정이 이럴까? 아주 사소한 실수에도 프로그램 전체가 중단될 수 있다는 심적 부담으로 매일 밤 잠을 설친다. 또한 월드비전은 정치적 중립인 인도적 구호단체임을 양쪽 모두 인정해 신변안전 문제는 없다지만 양쪽 공히 중무장한 군인들이라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내일(23일)부터는 현장방문이다. 일주일간 배분이 끝난 산골마을들을 돌아보는 일이다. 현장에서 만날 반군들은 무섭지 않으나, 추석 명절을 집에 전화 한 통화 못하고 혼자 보내야 하는 쓸쓸함은 무섭다. 네팔 산골짜기의 보름달이 아무리 크고 밝아도 말이다.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 이 글은 현지 통신사정으로 게재가 늦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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