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한겨레 | 씨네21 | 한겨레21 | 이코노미21 | 초록마을 | 교육과미래 | 투어 | 쇼핑

통합검색기사검색

한토마

사설·칼럼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 국제 | 문화 | 과학 | 만평 | Editorials | 전체기사 | 지난기사

구독신청 | 뉴스레터 보기

편집 2004.08.25(수) 17:27

비공식 한국 대표선수


세계일주 중, 네팔에서 있었던 일이다. 몇 개의 긴 트레킹 코스를 엮어 한 달 이상 해발 4천, 5천미터의 히말라야 산 속을 누빌 생각이었다. 등산이라면 걸음마할 때부터 한 일이라 자신 있었다. ‘산들의 고향’을 걷는다는 기대와 흥분도 최고조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트레킹을 시작한지 일주일도 못되어 복병을 만났다. 고산증이 난 것이다. 어지럽고 토할 것 같고 영하 15도가 넘는데도 온몸에 불이 붙은 듯 더웠다. 고산증은 대개 해발 3000미터부터 산소부족으로 나타나는데 두통, 호흡곤란, 방향감각 상실 등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나는 그때까지 그렇게 높은 산에는 올라가 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평소대로 산 다람쥐처럼 잰걸음으로 오르락내리락 한 것이 화근이었다. 고산증이 나면 한시바삐 산을 내려가야 하지만 나는 이미 탈진한 상태여서 한 발자국도 옮길 수 없었다. 이런 나의 상태를 네팔인 안내 겸 포터가 확인하고는, 얼른 주머니에서 마늘을 꺼내 찧어서 입에 물게 했다. 고산증 특효란다. 그리고는 나를 등에 들쳐업고는 100미터쯤 가서는 나를 내려놓고 다시 돌아가 배낭을 가져오기를 수 십 차례 반복하며 하산했다. 업혀있던 내가 그의 등에 여러 차례 마늘을 토해놓아도 싫은 표정은 커녕 “잘 참았어요.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돼요”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하루 하고도 반나절을 그렇게 포터에게 업혀 무사히 산을 내려왔다.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네팔 사람이라면 무조건 좋고 만나면 반갑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잘해주고 싶다. 세계일주 직후, 한국에서 네팔인 두 명을 만났다. 우리 집 앞 가게에서 과자로 끼니를 때우고 있던 20대 초반의 노동자였다. 한 달에 두 번 쉬는데 쉬는 날에는 공장에서 밥을 안 주기 때문이란다. 월급 중 5만원만 빼고 모두 본국으로 보낸다니 밥 사먹을 돈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집에 가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뭘 먹고 싶냐니까 계란 후라이란다. 그래서 달걀 한판을 사서 부쳐주었더니 두명이 숨도 안 쉬고 계란 후라이 30개를 단숨에 먹어치웠다. 밥먹고 나서는 뭐가 제일 하고 싶냐니까 목욕이란다. 3천원 이상하는 공중 목욕탕값이 너무 비쌌던 모양이다. 그날 저녁 우리 조카들이랑 어울려 요란하게 목욕하고, 몇 마디 못하는 한국말과 영어를 절묘히 섞어 한바탕 이야기꽃을 피우다 돌아갔다.

그날 이후 그 친구들은 휴일은 물론 설날이나 추석도 우리 집에서 보냈다. 올 때마다 뭘 먹고 싶냐면 예외없이 계란후라이. ‘그래, 그걸 못해주랴. 너희들 네팔로 돌아갈 때까지 올 때마다 계란 한판씩 부쳐주마’.

이 친구들 사장은 욕도 잘하고 자주 때렸던 모양인데 우연히 이들의 ‘친정집’이 오지 여행가 한비야네라는 걸 알고부터는 더 이상 때리지 않더라며 신기해했다.

나는 이 네팔 친구들에게 정말 잘해주고 싶다. 이건 순전히 10년전 나에게 순수한 친절을 베푼, 그 고마운 포터 때문이다. 사람 심리가 이렇다. 단 한사람 때문에 어떤 나라 사람 전체가 고맙고 좋기도 하고, 반대로 그 나라 전체에 거부감이 생기며 꼴보기 싫기도 하다. 대단히 단면적이고 다분히 감정적이지만 이게 인지상정이다. 이러니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라 안팎에서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대한민국 대표라고 할밖에.

우리는 또한 각자 속해있는 분야의 대표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회복지사, 변호사, 경찰들 중 단 한사람만 잘못해도 그 분야 사람들을 한꺼번에 싸잡아 욕하고 믿지 못하게 되지 않는가. 나 한사람이 무슨 힘이 있나 하지만 바로 그 한사람이 자기 나라와 속해있는 분야의 호감도와 이미지를 좌지우지 한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중요하고 힘이 쎈가 말이다.

나는 다음 주 네팔로 2개월간의 국제 물자배분요원 훈련을 받으러 떠난다. 훈련기간 중 나 역시, 참으로 자랑스런 장미란 선수나 유승민 선수와 다를 바 없는 ‘비공식 대한민국 대표선수’라는 점을 잊지 않을 생각이다.

한비야/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


  • [한비야칼럼]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10/27 19:18
  • [한비야칼럼] 네팔 반군과 구호식량 배분...09/29 18:31
  • [한비야칼럼] 비공식 한국 대표선수...08/25 17:27
  • [한비야칼럼] 지리산의 약초와 독초...08/04 15:50
  • [한비야칼럼] 그 석달간 국제사회는 무얼 했나...06/09 16:07
  • [한비야칼럼] 전쟁이 우릴 미치게 했어요...05/12 18:02
  • [한비야칼럼] 오늘이 나의 마지막날이라면...04/14 21:42
  • [한비야칼럼] 전쟁이 남긴 ‘선물’...12/11 16:03
  • [한비야칼럼] 이라크는 지금 전쟁중...12/11 15:59
  • [한비야칼럼] 물을 가져다주는 한국인...12/11 15:37
  • [한비야칼럼] 물을 가져다주는 한국인...11/19 19:14
  • [한비야칼럼] 전쟁이 남긴 ‘선물’...10/22 18:38
  • [한비야칼럼] 이라크는 지금 전쟁중...09/24 20:57
  • [한비야칼럼] 깨끗한 물 한통...07/23 18:18
  • [한비야칼럼] 알 룻바의 아이들...06/25 18:22
  • [한비야칼럼] 부끄러운 “ 마살람 ”...05/28 18:18

  • 가장 많이 본 기사

    •  하니 잘하시오
    •  자유토론방 | 청소년토론마당
    •  토론방 제안 | 고발합니다
    •  한겨레투고 | 기사제보

    쇼핑

    한입에 쏘옥~
      유기농 방울토마토!

    바삭바삭 감자스낵!!

    속살탱탱 화이트비엔나소시지~
    딱 1번만 짜는 초록참기름~
    건강한 남성피부 포맨스킨~

    여행

    신개념 여름 배낭의 세계로
    2005 실크로드 역사기행!
    천년의 신비 앙코르왓제국
    전세기타고 북해도로~!

    해외연수/유학

    캐나다 국제학생?!?
    세계문화체험단 모집
    캐나다 대학연계 프로그램
    교환학생 실시간 통신원글

    클릭존

    남성,확실한1시간대로?
    고혈압관리-식약청인정1호
    ◈강남33평아파트 반값입주
    강원도 찰옥수수 9,900원
    [속보]영어가 느리게들렸다

     

     
     

    인터넷광고안내 | 제휴안내 | 개인정보보호정책 | 지적재산보호정책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 사이트맵 | 신문구독 | 채용

    Copyright 2006 The Hankyore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