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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8.04(수) 15:50

지리산의 약초와 독초


이번 여름휴가는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보냈다. 보통 1박2일 길어야 2박3일 걸리는 45㎞ 주봉 종주길을 꼬박 나흘 동안 걸었다. 걷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긴 ‘게으른 산행’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길 정말 잘했다. 아니었으면 새벽 기차에서 내려 노고단으로 걷기 시작할 때 벌어진 별잔치를 보지 못했을 거다. 밤하늘에 지저분할 만큼 많은 별들이 정말 금강석을 깔아놓은 듯 반짝거렸다. 별이 하도 예뻐 아예 길에 드러누워 있던 덕분에 별똥별도 네 개나 보았다. 그날 밤, 연하천 산장 명선봉에서 본 지리산의 밤 경치는 평생 잊지 못할 거다. 달빛 아래 펼쳐지는 능선의 파노라마. 어디를 봐도 높고 낮은 능선의 파도가 치는 것이 꼭 360도 원형극장 안에 있는 것 같았다. 다음날 세석평전의 보름달은 어떻고.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하도 밝아 잠을 설쳐서 머리 위에 있던 보름달이 45도 각도로 기울 때까지 밖에 나와 달구경을 했다. 만약 낮에 힘든 산행을 했다면 보름달이고 뭐고 그냥 떡이 되어서 잤을테니, 이건 정말 게으른 산행이 준 특별 보너스다.

그뿐만이 아니다. 당당하게 혹은 수줍게 피어 있는 그 많은 야생화. 각양각색의 들꽃들이 산길을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진다. 때로는 누군가 공들여 가꾼 것 같은 온갖 종류의 들꽃들이 무리지어 피어 있기도 했다. 온 산이 그야말로 초대형 꽃밭이다. 제일 눈에 띄는 오렌지색 동자꽃, 종 모양의 보라색 모싯대, 파란 꽃판 옆에 나비처럼 꽃잎이 붙어 있는 산수국, 소박한 꽃들 사이에 고혹적인 진분홍색의 산나리까지. 이런 꽃잔치 덕분에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숨이 턱까지 차면서도 기분이 좋아서 저절로 희쭉희쭉 웃음이 났다.

이렇게 천천히 걷다 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도 보였다. 곳곳에 붙은 경고문이 그렇다. “지리산은 약초와 비슷한 독초가 많으니 산나물 약초 채취를 일체 금합니다.”

세석산장 등산로에서 본 푯말에도 이런 글이 있었다. “진달래와 철쭉은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 진달래는 흔히 먹는 꽃이나, 철쭉은 먹으면 눈이 먼다.” 또한 취나물 중에서도 제일 맛있다는 곰취나물과 흡사한 어떤 이파리는 먹으면 급사할 만큼 맹독성이 있다고 한다.

모두 겉보기가 비슷하다고 사이비를 먹으면 큰일나니까 주의하라는 말이다. 사이비(似而非), 글자 그대로 비슷하나 다른 것이다. 그 다르기의 정도가 약초와 독초처럼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니 사이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모든 사이비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진짜보다 더 현란하고 더 보기 좋고 더 진짜 같다. 사이비 옆에서는 진짜가 훨씬 초라해 보인다. 사이비의 본질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니 속지 않으려면 평소에 진위를 가려내는 감식안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진짜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진짜와 사이비라. 그럼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소박한 진짜인가, 현란한 사이비인가. 사이비에 속고 싶지도 않지만 내가 사이비가 되어 남을 현혹시키고 싶지도 않다. 아니 그렇게 사는 건 죽어도 싫다.

그러나 고백컨대 무르익지 않는 생각이나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얘기할 때 쓸데없이 나는 말이 많아진다. 미사여구도, 예화도 인용구도 많이 쓰면서 문장을 현란하게 만든다. 잘 모르는 것을 덮기 위한 일종의 교란전술인데 지금 보니 이게 바로 사이비의 특징이 아닌가 반대로 내가 확실하고 분명하게 아는 일에 대해서는 그저 주어와 목적어만으로도 뜻을 충분히 전할 수 있다. 간단명료하고 소박하게 말이다. 그러니 사이비가 되지 않으려면 내가 정말 정확히 알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스스로 실천하고 있는 일만 쓰고 말해야 한다. 할말이 없을 때는 입을 다물 줄도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우선 ‘진짜’의 시작은 되는 게 아닐까

별잔치, 꽃잔치와 더불어 게으른 종주산행이 내게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할 수 있는 보너스까지 주었다. 역시 지리산이다.

한비야/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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