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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5.12(수) 18:02

전쟁이 우릴 미치게 했어요


“총을 들면 내가 아주 힘이 세다고 느끼죠. 사람들이 내 말을 잘 듣거든요.”

무장해제 캠프에서 만난 소년병 출신 카줄루가 말한다.

“그런데 왜 무기를 반납하려고 하지” 내가 물었다.

“총이 있으면 항상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총만 없으면 나도 민간인이잖아요. 더 이상 사람 죽이기 싫어요.” 카줄루는 이제 겨우 13살이었다.

지난주까지 나는 서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에 있었다. 지난해 9월까지 정부군과 반군 간의 내전이 치열했던 곳이다. 인구 280만명의 작은 나라에서 14년 동안 약 30만명이 죽거나 다쳤고 무려 100만명이 피난민이 되었다고 한다.

자유의 땅이라는 뜻인 라이베리아는 1821년 건국 이래 원주민과 해방노예 간의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다가, 지난해 해방노예 후예인 테일러가 권좌에서 물러나면서 마침내 평화가 찾아왔다. 2003년 10월 종전 직후 1만명이 넘는 유엔평화유지군이 들어와 치안을 유지하고 무장해제 프로그램을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다.

비행기를 4번 갈아타고 꼬박 40시간 걸려서 찾아간 라이베리아. 그곳은 예상대로 내전의 극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특히 2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소년, 소녀병의 무장해제 문제와 거의 온국민이라도 해도 좋을 사람들의 전쟁후증후군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전쟁이 끝났으니 무장세력들의 무기를 회수하고 떠돌아다니는 난민을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월드비전 긴급구호팀도 이 두 가지 일에 깊이 관여하며 라이베리아 조기 평화정착에 애쓰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과 함께 대형난민촌에 기초식량을 제공하는 일, 세계아동기금(UNICEF)과 협력하여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와 임신·수유부에게 영양죽을 공급하는 일, 소년병과 성폭력 피해 여아들에게 놀이와 게임, 상담을 통한 집단 심리치료를 하는 것 등이다.

특히 어린 소년, 소녀병을 무장해제만 하고 심리치료를 하지 않거나 사회 재진입을 위한 교육과 취업훈련이 없으면 결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범죄조직에 가담하거나 특정세력의 용병이 되어 또 다른 사회불안을 낳게 된다. 그래서 이번 무장해제 프로그램에는 무기 자진 반납과 더불어 몇개월 간의 입소 재활교육 과정이 있다. 이 교육을 마친 소년병은 300달러의 정착자금을 받고 사회에 복귀하게 된다.

무장해제는 전국에서 동시에 실시하고 있는데 하루에 수천명이 이름도 알 수 없는 각종 무기를 들고 유엔 캠프로 왔다. 총알 든 총은 보기만 해도 무섭다. 반납 뒤 재활캠프에 온 소년병들, 자기 부모가 눈앞에서 무참히 살해되는 것을 보고 자진해서 반군이 되었다는 아이부터, 한밤중 소변보러 나왔다가 잡혀 소년병이 된 꼬마까지 사연도 가지가지다. 반군들은 아이들에게 술이나 마약을 먹여 수치심과 소심함을 없앤 후, 어린 아이일수록 아주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을 보게 하거나 일부러 살인을 강요했다고 한다.

여자아이들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마을을 약탈하러 들어온 반군은 80대 할머니든 10살 미만의 꼬마든 여자들을 성폭행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는 끌고가서 낮에는 탄약을 나르거나 밥, 빨래 등을 시키고 밤이면 집단으로 성노리개로 삼았단다. 때리고 굶기고 가슴과 얼굴을 불로 지지는 등 재미 삼아 하는 잔인한 고문의 대상이기도 했단다. 16살 된 앳된 얼굴의 미티미는 온몸에 한군데도 성한 곳 없이 담배불 자국과 칼자국이었다. 1년 전 혼자 반군의 아이도 낳았단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저 아이는 몸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를 더 씻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겁에 질린 피해자와 잔인한 가해자가 집단 심리 치료교실에서 함께 섞여 춤추고 노래하며 웃고 까불 때는 오랫동안 감추고 있던 천진한 10대의 얼굴로 돌아온다.

“나는 그동안 미쳤었어요. 전쟁이 나를 미치게 했어요.”

17살 된 모모가 절규하듯 말했다.

그렇다. 라이베리아 소년병을 통해 나는 확실히 알았다. 한마디로 전쟁은 미친 짓이다. ‘정의로운 전쟁’이라니, 세상에 ‘달콤한 소금’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한비야/월드비전 긴급구호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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