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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1.23(일) 22:01

기자의 불감증


한 보고서에 의하면 일생 동안 오르가슴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하는 여자의 비율은 5% 정도인 데 반해 후천성 불감증은 30%나 된다고 한다. 애초부터 ‘감’이 없는 사람의 불감증보다 후천적 요인으로 ‘불감’의 상태에 돌입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말이다. 도덕적 불감증도 후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예민했는데 환경적 요인을 이유로 서서히 감각을 포기하는 것이다. 불감증의 또다른 사회적 이름은 ‘관행’이다. 불감증에 걸린 집단과 개인이 많은 사회일수록 불가사의한 관행들이 괴력을 발휘한다. 관행은 핵심감정이 결여된 행위다. 관행의 가장 큰 문제는 애초부터 본질을 못 보게 하거나 일부러 외면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엽적 문제에 몰두하여 본질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문화방송〉 이상호 기자의 양심고백에서 출발한 ‘구치백’ 파문은 그러한 관행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건의 개요도 그렇고 그것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도 그렇다. 대부분의 언론은 그 사건의 핵심을 내부고발이냐, 개인의 공명심이냐로 양분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사건의 본질은 언론인으로서 자본과의 관계설정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한 중견기자의 자기성찰에 있다. 문제제기 방식의 타당성이나 타이밍 등은 지엽적인 것에 불과하다.

윤종훈 회계사가 부유세 문제에 관한 심적 갈등을 토로하고 민주노동당을 떠나자 “왜 당내의 일을 안에서 풀지 외부 언론에 흘려 당의 명예를 훼손시키냐”며 “특정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비난이 흘러나왔다. 이 기자에게도 비슷한 힐난이 반복되지만 그에게 ‘특정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을 포함해 ‘자본에 대한 기자적 감각이 마비된 불감증’에 대한 고백성사인 듯 보인다. 전임 문화방송 사장이었던 김중배씨가 “언론은 이제 권력과의 싸움에서 보다 원천적인 제약 세력인 자본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선언하며 〈동아일보〉 편집국장 자리를 내던진 것이 1991년이다.

그 힘겨운 싸움이 본격적이고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한 증거가 이 기자의 양심고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벽을 등지고 싸우면 백명과 싸워도 이길 것이라는 평가를 받던 전설적인 싸움꾼 시라소니는 결국 360도 적으로 둘러싸인 싸움에서 결정적으로 패해 주먹계를 떠났다. 언론이 권력과 각을 세우는 것은 벽을 등에 지고 하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싸움이다. 권력과 맞서면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때 국민들이 힘을 모아준 것처럼 확실한 지원세력이 생겨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하지만 자본과의 접전은 사방에 둘러싸인 적에 맞서 홀로 360도를 돌며 싸워야 하는 전방위 싸움이다. 피아의 경계마저 확실치 않아 자기합리화의 유혹을 느끼기 십상이다. 기자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소규모라도 의사들의 모임이 있으면 제약회사에서 나와 식대를 지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1인당 3만~4만원 정도 갹출하면 해결될 일을 일부 의사들은 관행을 앞세워 기꺼이 자본의 힘을 빌린다. 그런 자리에서 정색을 하고 자본과 의료의 결탁을 비판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 기자도 문제가 된 식사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못한 이유에 대해 그동안 회사에서 늘 ‘데리고 있기 힘든 놈’으로 찍힌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작은 허물까지 다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자본과의 싸움은 그만큼 인간적이고 미묘하며 전선이 불명확하다는 얘기다. 그런 싸움에 나선 이 기자의 양심고백을 쌍권총 쏘아대는 홍콩 활극의 주인공처럼 바라보는 시각은 지극히 관행적이다.

‘김중배 선언’이 자본의 언론통제에 경종을 울리는 역사적 시작인 것처럼 이 기자의 양심고백 또한 자본에 대한 기자의 불감증을 자기매질하는 ‘이상호 선언’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도록 사안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상호’로 대변되는 예민한 기자들이 지금처럼 자본에 대한 민감함을 유지할 수 있는 한 나는 그들이 결국엔 자본과의 전방위 싸움에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아낌없는 지지를 보낸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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