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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2.26(일) 19:35

아듀, ‘주성영’


눈을 감은 채 여자친구와 입을 맞추던 남자가 슬며시 눈을 뜨는데 여자가 입맞춤을 하면서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자기를 바라보고 있더란다. 놀란 남자는 입을 떼었고 결국 여자친구에게 절교를 선언했다. 그러지 않아도 될 순간에조차 각성상태에 돌입해 있는 사람을 보는 일은 불편하다. 각성이란 말 그대로 깨어있는 상태이며, 혼수상태는 의학적으로 각성이 안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정신의학에서는 개인적 영역에서 상황에 따라 각성상태를 자연스럽게 허물 수 있는 것은 건강상태를 의미한다고 본다.

그러나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각성상태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자기방어 기제가 무너질 경우 인간과 짐승은 다르지 않다. 더구나 공적 영역에서 각성상태가 완전히 허물어진 권력기관을 목격하는 일은 아찔하다. 한 개인이면서 동시에 독립된 헌법기관의 지위를 부여받은 국회의원에겐 늘 그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최근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을 향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간첩공세는 일상적 각성이 붕괴된 권력기관의 두렵고 끔찍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나라당 의원이 뜬금없이 간첩설을 제기하자 원내대표는 ‘국회의 정체성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라며 사죄를 요구하고, 내란음모 조작사건에 연루되어 고문까지 받았던 한 의원은 과거의 동지와 후배들을 간첩으로 몰고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우는 데 힘을 보탠다. 그들의 행태에 나는 전율한다. 거의 혼수에 가까울 만큼 각성상태가 무너졌을 경우에도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이유로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두렵고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들이 지도부에 대해 믿을 수 없을만큼 종속적이라는 사실이 절망스럽다. 그 전율의 중심부에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있다.

그는 “당 지도부가 시켜서가 아니라 원내대표단의 원내전략 차원”에서 이철우 열린우리당 의원에 대해 “현재까지 간첩으로 암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난여론이 빗발치자 곧바로 ‘간첩’이나 ‘암약’ 같은 표현에 과장이 있었다고 물러섰지만 들끓는 분노와 절망을 ‘거품’으로 확신하는 그의 태도는 두렵다. 이 사건에 대해 단지 “정치적으로 지는 싸움을 했고 한나라당에 부담을 안겼다고 느낀다”는 그의 인식은 최악이다. 그 어디에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보이지 않는다. 그가 17대 초선의원 129명을 대상으로 한 〈시사저널〉 조사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워스트 의원’ 1위에 올랐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지 않다.

주 의원은 지난해 8월 부장검사 시절 쓴 한 칼럼에서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 3년 동안 반공법 위반으로 복역한 한 노숙자 노인을 조사한 경험담(▶[원문보기])을 이렇게 술회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일이 있은 후 지금까지 실체적 진실 판단에 자신이 없을 때마다 항상 그 노인을 생각한다. 슬픈 눈동자의, 그러나 착한 느낌을 주던, 그 노인의 안개서린 눈망울을. 그 인생을.” 그로부터 이제 겨우 1년6개월이 지났을 따름이다. 동료의원을 ‘추론’을 통해 간첩으로 몰아놓고 정치적 곤경에 빠지자 새 직장에서의 성장통쯤으로 이해하는 그의 인식구조는 편리하다. 자기 성장하자고 남의 목에 시퍼런 비수를 들이댄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뇌구조로는 한나라당의 뇌구조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나는 최소한의 각성상태조차 유지하지 못한 듯한 그의 뇌구조를 이해할 만하다. 검사시절부터 음주운전이나 음주폭행 등의 입방아에 오른 그의 일관된 전력을 보노라면 각성상태가 쉽사리 무너지는 그의 정신적 취약성에 의사로서 최소한의 연민은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이해해줄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따로 있다. 나는 주성영 의원을 보며 각성상태가 붕괴된 권력기관의 무서움을 실감한다. ‘아듀 2004년’이 다시 올 수 없는 2004년에 대한 작별인사라면 나는 ‘주성영’으로 상징되는 혼수상태의 권력기관들에게, 올해를 마지막으로 다시는 이런 시대착오적인 색깔공방이 재연되지 말라는 의미에서 이런 세밑인사를 보낸다. 아듀, ‘주성영’.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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