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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1.28(일) 20:13

각성은 이미 빛나는 달성


의처증이 심한 한 남자는 저녁마다 침대를 방문 앞으로 옮겨 문을 막아놓고 부부가 함께 그 위에서 잠자리에 든다. 혹시 자고 있는 사이 아내가 어딘가를 다녀올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어서다. 의처증은 명백한 병적 현상이지만, 의심의 정도로만 따지면 최근 17대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187명으로 17대 국회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초선의원들에 대해서는 특히 그렇다. 그와 관련해 한 시사주간지의 표지 제목은 ‘국민 모독’이다. 아수라 국회를 만든 장본인이 다름 아닌 초선의원들이라며 17대 국회에 희망이 있느냐는 것이다. 한 여성신문은 구태정치 대열에 여성의원들까지 합류했다며 그들을 질타한다. 대부분의 여성의원이 초선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 또한 17대 초선의원에 대한 못마땅함의 토로다. 지난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초선의원들이 파행과 정쟁이 넘쳐난 17대 국회에 대해 ‘고백성사’를 하고 자성을 다짐하는 자리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초선의원들의 마음고생을 말로 표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정치인들에게 그런 염치가 어디 있겠냐고 핏대를 올린다면 그 역시 구태의연한 작태다. 싸잡아 매도하지 않고 찬찬히 살펴보면 쉽게 삿대질할 수 없는 초선의원들을 발견하게 된다. 아직 눈에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이룬 개혁의 성과도 적지 않다. 나는 그런 초선의원의 이름을 한 30명쯤은 숨도 쉬지 않고 거론할 수 있다. 나의 경우 그 이름의 맨 꼭대기에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있다.

최 의원이 17대에서 가장 능력이 출중하고 성실한 입법기관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회의원으로서의 ‘각성’을 늘 되뇌는 그의 의정활동은 발군이다. 최 의원은 <문화일보> 국감평가에서 교육위 소속 의원 가운데 1위, <경향신문> 평가에서는 여성 의원 가운데 1위에 올랐다. 국감이 파행을 겪을 때, 그가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숱하게 들었던 ‘정치인들 싸움질 좀 하지 말고 경제나 챙겨라’는 비난을 듣는 자리에 자신이 앉아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는 최순영의 고백은 신음처럼 들린다. 그는 ‘각성은 그 자체로서 이미 빛나는 달성’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한다. 그의 삶 자체가 각성의 연속이었다. 십대 후반에 ‘공순이’ 생활을 시작해 스물여섯에 노조위원장이 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유신정권 붕괴의 기폭제가 된 1979년의 와이에이치(YH)투쟁을 이끌어 한국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노동운동가다. 80년대엔 노동자를 위한 최초의 탁아시설 개원, 결식아동을 없애는 최초의 학교무료급식 등의 시민사회 운동을 전개했고, 90년대엔 8년 동안 부천 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며 지역의 많은 현안들을 의미있는 결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한 각성의 결과물이 17대 국회의원 최순영이다.

일생의 매순간, 매상황마다 각성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다. 천둥소리에도 잠을 깨지 않는 아기 엄마가 아기의 작은 울음소리에는 즉시 잠을 깨는 것처럼 저마다 유별나게 각성상태를 보이는 사안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성향이나 기타의 이유로 최순영의 이름을 맨 꼭대기에 올려놓는 내 개인적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순영으로 상징되는 ‘각성상태의 초선의원들’에게 힘을 보태는 일이 정치개혁을 앞당기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6월 정치학회가 17대 의원 229명을 상대로 한 연구결과를 보면, ‘17대 국회의원 중 가장 진보적인 의원’ 1위는 최순영 의원이었다. 장애인교육권 확보, 결식아동문제 해결, 분만휴가, 이주노동자단체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 그동안 최 의원이 집요하다 할 만큼 매달려온, 그 당연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찾는 일들이 진보를 뜻하는 것이었다면 나는 진작에 진보주의자가 되지 못한 사실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각성은 그 자체로 이미 빛나는 달성이라는 정치인 최순영의 말을 실감한다.

정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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