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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8.01(일) 16:10

사회적 공감력의 척도


걸핏하면 ‘우리가 학교다닐 때는...’같은 류의 말을 하는 사람은 미덥지 않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보편타당한 삶의 원리처럼 밀어붙이는 단순성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어서다. 그런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이가 들수록 경험을 중시하는 태도는 점점 확고해 지는 듯 하다. 70년대에 태어난 한 소설가는 자신이 치명적인 역사적 경험을 하지 않은 것을 행운으로 느낀다고 말한다. 6.25 등 너무 강렬한 체험을 한 사람의 경우 모든 상황을 그 체험에 비춰보려고 하는 일종의 ‘편견‘이 생기는데 자신은 그런 한계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수긍과는 별개로 체험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영역도 존재한다.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정책문제가 바로 그런 영역이다. 이런 영역에서 체험은 편견의 실마리가 아니라 편견을 극복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지난 7월 한달간 참여연대와 아름다운 재단은 최저생계비 현실화 및 개선방향의 공론화를 위해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에서 직접 최저생계비를 체험하는 캠페인을 실시했다. 11명의 체험단이 정부가 정한 가구별 최저생계비(1인 가구 36만원, 4인 가구 105만원 가량)만으로 한달을 생활한 체험사업으로, 이번 체험의 결과는 정부측 실계측 자료에 대한 판단근거로 활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체험사업에 참여한 이들이 가장 많이 입에 올린 단어는 ‘편견’이었다. 최저생계비 생활체험을 통해 스스로가 빈곤계층과 정책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갖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급자가 게으를 수도 있다는 편견, 최저임금이나 국민연금 수급액 등과 비교할 때 현행 최저생계비가 살만한 정도일 수도 있다는 편견이 여지없이 깨졌다는 것. 별도의 생계비용이 필요한 장애인이나 학생, 아동, 환자 등이 있는 가구는 그렇지 않은 가구보다 생계비가 더 많이 드는데 현행 최저생계비는 그런 사항들이 전혀 고려되어 있지 않은 최저생존비 수준이라는 것이 그들의 육성이다. 그들의 개인적 체험담은 최저생계비의 적정수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실증적 검증없이 ‘살 수 있다, 없다’는 식으로 진행돼 온 책상머리 공방을 잠재울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나는 체험단이 온라인을 통해 일기식으로 공개한 체험수기를 보며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와 관련된 정책결정에 ‘체험’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새삼 실감했다. 30여년간 최정상급 대우를 받아온 한 드라마 작가는 자신의 아들이 연출부로 일하게 된 얼마전부터 대본 마감일을 꼭 지키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아들의 입을 통해서 드라마 제작 현장에 있는 이들의 어려움을 새삼 실감했기 때문이다.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장애인이나 노인의 유사체험을 하게 한다면 건축물의 형태는 지금과 많이 달라질 것이다. 의대생들의 교과 과정에 환자 체험을 도입한다면 의료서비스의 근본정신이 좀더 극명하게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절실한 체험을 한 이들은 공감의 폭이 커지게 마련이며 사회적 공감력을 키우기 위한 ‘체험의 활성화‘는 하나의 제도적 대안일 수 있다.

특히나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생활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고 집행하는 이들에게 ‘체험(직접체험, 간접체험, 유사체험)’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을 갖춘 정책과 그렇지 않은 정책은 책상위에서는 종이 한 장 차이지만, 현장에서는 백과사전 두께만한 차이를 보인다. 생활이 어려워 전기세를 체납했을 경우라도 7~8월 혹서기나 12~1월 혹한기에는 단전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제도, 그런 여백이나 배려가 사회적 공감력의 한 표현이 아닐까.

얼마전 예술의 전당 앞에는 교각이 없고 외관이 아름다운 그야말로 예술적인 50억원짜리 육교가 완성되었다. 그 다리를 시공한 건설사 슬로건은 ‘건너고 싶은 육교’였지만 장애인은 건널 수가 없다. ‘체험사업’의 확장을 제도화하면 최소한 이런 일은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최저생계비 체험사업의 결과를 보면서 다시금 떠오르는 생각이다.

정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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