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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4.11(일) 18:24

추가파병과 선택적 사고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과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이 한 토론 프로그램에서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토론을 지켜본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전여옥이 임자를 만나 호되게 당했다’는 쪽과 반대로 ‘유시민의 코가 납작해졌다’는 쪽이다. 자신의 정치성향과 개인적 호불호에 의해서 같은 사안을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일종의 선택적 사고이다. 선택적 사고는 현상을 자신의 가치관과 스타일로 걸러서 필요한 부분만 취하는 사고방식이다. 자동차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차이처럼 관점이 달라서 오는 경우도 있지만 무지때문인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거나 선택적 사고는 객관적 사실을 외면한다. 정도가 심해지면 다른 여자와의 동침 현장을 아내에게 들킨 남자가 “당신 눈을 믿어 나를 믿어”라고 말하는 영화의 한 장면같은 코미디가 연출된다.

나는 정치현상의 분석은 비교적 선택적 사고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점수가 있는 스포츠 경기는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아깝게 졌을 경우 ‘내용에선 이겼다’는 식으로 일부 선택적 사고가 작동하지만 결과는 수용한다. 하지만 정치의 영역에서는 그런 단순한 잣대의 적용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수내기’식 정치에 목숨걸고 매달리는 행위이다. 정당의 입장에서는 유일하게 계량화가 가능한, 선거라는 정치 행위에 모든 정치적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 이번 17대 총선에 나온 대부분 정당들의 특정 현안에 대한 행태에 동의할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 나는 이라크 추가 파병에 반대한다. 이제 파병 지역과 날짜만 결정하면 될 시점에서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총선을 불과 3일 앞두고 각 정당의 입장에 따라 득표율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파병문제에 대해서 무슨 뚱딴지같은 발언인가, 그렇게 눈을 흘기는 소리가 들린다. 이라크 추가 파병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한 예비역 장군이 군관련 모임에서 제명을 당하는 현실에서 그런 눈흘김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정치가 지향해야 할 최종 목표는 국민의 생명과 존엄성을 지켜주는 일이다. 침략을 당해 어쩔 수 없이 싸워야하는 때가 아니라면 전쟁은 어떤 경우에도 옳지 않다. 지난 10년간 주로 제3세계를 돌아다니며 전쟁과 그로인한 가난 때문에 고통받는 아이들을 도와온 탤런트 김혜자씨가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책을 냈다. 그녀의 헐떡이는 신음소리가 들릴만큼 그 기록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포로로 잡힌 사람들의 손가락, 손, 입술, 귀 등을 즐겨 절단하는 것으로 악명높았던 한 전쟁에서 약 20만명이 사망했으며, 수만명이 사지를 절단당하거나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 전쟁의 광기는 강제로 마약주사를 맞은 열서넛된 소년병에게 목 떨어진 몸이 몇 발자국 걷나 내기를 하게 하는 생지옥을 만든다. ‘땅에 내려놓아도 발자국이 생기지 않을’ 만큼 말라 비틀어진 아이들을 돌보며 내뱉는 김혜자씨의 절규는 가슴을 오그라들게 만든다. “전쟁은 안됩니다. 어떤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도 전쟁은 안됩니다. 꽃으로도 이 아이들을 때려선 안 됩니다.” 같은 일을 하고 있는 한비야씨는 자신을 포함해 그 참상을 직접 본 사람은 ‘누구든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단언한다. 파병이란 그런 전쟁의 가해자가 되겠다는 의미이다. 국익 혹은 국제적 약속이라는 명분으로 파병을 강행한다면 김혜자씨의 표현처럼 우리 모두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부끄럽고 슬퍼해야 마땅하다. 인간의 생명이 걸린 파병 문제까지 점수내기식 정치의 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한 4성 장군은 월남전 참전 고백 수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쟁의 체험은 두 갈래로 후일담을 만들어 간다. 하나는 더 잔인하고 정교한 전쟁 기술을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또 하나는 비참한 전쟁의 체험을 통해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전쟁을 충분히 경험한 우리의 선택적 사고는 어느 쪽인가.

정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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