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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12.11(목) 15:31

면책특권


국회의원의 발언이 면책특권의 범위를 벗어나 무분별한 의혹제기와 정치공세로 이어진다는 사회적 개탄과 면책특권 관련 법령을 개선해야 한다는 정치적 주장. 꼭 2년 전인 2001년 10월,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한 언론 보도의 개략적인 내용이다. 다시 그로부터 2년 전인 1999년 10월, 정형근 의원이 제기한 ‘언론대책문건’ 파동에 대해 당시 언론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보여줄 사건’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그 한계는 밝혀지지 않았고 2003년 10월, 드라마를 재탕 삼탕 방영하는 유선방송처럼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 대한 논란은 조금의 가감도 없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오죽했으면 박관용 국회의장이 “국회의원이 아무리 면책특권이 있더라도 근거는 갖고 발언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경고를 했을까. 유시민 의원은 중국 주재 북한대사관 방문설을 제기한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이 자신에게 사과를 했지만, 헌법이 정한 국회의원 면책특권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하기 위해 ‘개인 감정’ 없이 김 의원을 고소하겠다고 말한다. 그 특권의 한계에 대한 궁금증이 어디 유 의원 혼자만의 것이겠는가.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밖에서 민·형사상의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는다는 면책특권은 어떤 의미에선 절대자유를 구가할 수 있는 ‘비현실적’ 환경이며, 이런 특수한 환경 아래서 인간은 대체로 심리적 퇴행상태를 보인다. 어른이면서도 아이의 심리적 양태를 보인다는 말이다. 발달기의 아이에게는 ‘무책임’의 순기능이 있다. 끝없는 호기심과 천진난만함, 뒷일 걱정 없이 현재를 즐기는 태도 등으로 그것은 창의력의 원천이 된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그런 것들은 무작정한 떼쓰기와 대책 없음 등과 동의어이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어른다움의 기본적 긴장에서 해방된 상태라서 그렇다.

지난해 9월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던 김원웅 의원은, 의원들이 대통령 후보자들의 용병을 자처하며 면책특권을 맹주에게 충성하는 도구로 이용하여 국감장을 더럽히고 있다고 질타한다. 또한 대다수의 언론들은 의원들의 황당무계한 발언이 의원 개인의 정보나 소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 당 지도부의 ‘주문생산’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충성폭로’, ‘청부폭로’인 셈이다. 심지어 어떤 의원은 발언대에 나와서야 당직자가 건네준 쪽지를 처음 펴보며 내용도 잘 모른 채 더듬더듬 읽는 사례까지 있단다. 평소의 인품이나 이력에 비추어 가정법이 난무하는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발언을 할 사람이 아님에도 뻔뻔하고 태연스럽게 그런 짓을 하고 있는 의원들이 많은 것은 책임 면제에서 비롯한 심리적 퇴행상태가 어른다운 판단능력을 거세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두목으로부터 폭력사주를 받은 단순무식한 깡패도 자신의 행동에 뒤따를 형벌을 생각하면 잠시 주춤하게 된다. 완벽하게 안전할 수 있다는 보장만 있다면 남의 등에 칼을 꽂는 일도 조금도 망설일 이유가 없다. 악의적 루머나 중상모략을 지칭하는 ‘마타도어’는 소가 죽을 때까지 소의 등에 칼을 꽂는 투우사를 의미한다. 투우 경기장 안에서는 투우사에게 직무와 관련된 어떤 책임도 묻지 않듯 면책특권은 국회의원에게 마타도어의 자유를 완벽하게 보장한다.

면책은 인간의 성숙성 자체를 해체할 수 있다. 책임이 없으면 생각할 이유가 없고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본능 덩어리 그 자체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아온 독일 전 부총리가 낙하산을 타다가 숨졌는데 언론에서는 그가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그가 죽기 불과 1시간여 전에 독일 하원에서 그의 의원으로서의 면책특권 박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기 때문이다. 직업적 특수성과 명분을 앞세워 아무 고민 없이 면책특권을 남용하는 국회의원들은 다시 한번 그 특권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면책특권을 남용하다가 그게 몸에 배어 일상에서도 그런 정신으로 살다가 험한 꼴을 볼까 걱정스러워서 하는 얘기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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