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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1.14(일) 21:09

폭력과 감시 그리고 제복


각종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국민의 신망을 한몸에 받고 있는 쇼트트랙 여자 선수단에 상습적인 폭력과 감시가 있었다 하여 충격을 주고 있다. 사실 운동 선수단에 폭력이 있어왔다는 얘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쇼트트랙 선수단의 경우는 금메달의 영광에 가려져 있었을 뿐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여자에게도 무자비한 폭력이 가해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결국 폭력과 감시가 없었다면 금메달도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어디 운동 종목에 한정된 일이겠는가! 치열한 경쟁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국민 사이에 만연되어 있는 폭력의 수준은 이미 위험의 정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제는 아예 내면화되어 하나의 체질로 굳어지지 않았나 싶을 정도이다.

근대국가의 성립이 폭력과 감시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은 정치학에서 잘 알려진 이론이다. 굳이 학문적 이론을 빌릴 필요도 없이 우리는 몸으로 그것을 겪어왔다. 일제 강점기에서 시작하여 해방 직후 좌우대립, 전쟁, 혁명, 쿠데타, 유신독재, 암살, 또 쿠데타, 저항, 분신 …. 격동의 세월을 거쳐왔다고들 얘기하지만 인류 역사상 이렇게 피비린내 나게 서로 싸우고 증오하며 발전해 온 나라가 있을까 싶다. 가히 폭력이 체질화될 만한 역사를 살아왔다. 전쟁 직후에 태어난 나의 개인사를 보더라도 가정에서부터 학교,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폭력은 늘 곁에 있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 폭력을 정당화시켜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제복이다. 멀쩡한 사람도 제복만 입으면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폭력적이 된다. 아마도 제복에 의해 개인적 특성이 사라짐으로 해서 폭력이 서로를 구별하는 유일한 잣대가 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평소에는 감추어져 있던 폭력성이 제복을 통하여 표출되는 것이든지. 사실이 그렇다. 제복 입은 사람의 폭력은 그 책임이 특정 개인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집단 전체로 전가되기 때문에 폭력에 대해 더욱 대담해지는 경향이 있다. 운동선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제복(유니폼)을 입는 순간 개인의 독립된 인격은 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복을 입은 집단의 생명은 규율과 경쟁력의 강화다. 경쟁 상대자에게 지면 제복은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제복을 입고 있는 것 자체가 수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폭력과 감시는 거의 필연적이 된다. 폭력과 감시는 말하자면 제복의 존속을 위한 가장 유력한 수단이다. 이렇게 되면 제복에서 폭력이 나왔는지 아니면 폭력에서 제복이 나왔는지 알 수 없게 된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압도적인 제복차림은 거꾸로 그들 사회의 폭력과 감시의 수준을 말해준다.

불행하게도 나는 대한민국에서 입을 수 있는 제복이란 제복은 거의 다 입어보았다. 세대에 따라 어떤 제복은 폐지되기도 했지만 내 경우엔 이상하리만치 그런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벗어버린 것이 죄수복이다. 죄수복은 폭력의 측면에서 볼 때 제복의 최후 단계이다. 그 다음으로 군복, 운동복, 학생복, 성직자복의 차례로 폭력의 수준이 낮아진다. 폭력의 수준이 낮아진다는 것은 결코 폭력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폭력이 완화되거나 폭력행사의 방법이 세련된다는 의미이다.

우연히 둘러 본 사설학원의 풍경은 우리 사회가 제복으로부터 벗어난다고 해서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곳엔 눈에 띄는 폭력은 없었지만 시설과 분위기가 거의 감옥을 방불케 했다. 학원이 아니라 입시공장이라고 표현해야 옳을 듯싶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제복에 갇혀 폭력과 감시를 내면화한 한국인들은 사회에 나가서 그것을 다른 형태로 확대재생산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까? 폭력과 감시를 전제로 하여 성립된 국가의 일원으로 사는 한 방법이 없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을 것 같다. 제복도 필요 없고, 감시와 폭력도 필요 없는 사회구조-마을 공동체로 말이다. 역시 이상주의자의 몽상인가?

황대권 생태공동체운동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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