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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9.12(일) 17:14

국가안보를 저해하는 국가보안법


하나의 국가, 정부, 또는 국민으로서 세계화로 상징되는 21세기를 살아남기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이미 수많은 석학과 전문가들이 지적한 바 있지만 그것은 ‘유연성’이다. 흔히들 이 시대의 특징을 ‘불확실성’이라고 말한다. 인간과 자연을 포함하여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들이 전 세계적으로 뒤얽혀 시시각각 변하므로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도 빠르고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도 많은 시대에 한때 자신을 잘 지켜주었던 시스템이라 하여 무조건 고수를 주장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중심’을 굳건히 하되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변신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추는 것이 21세기 생존술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과연 국가보안법 체제는 대한민국의 중심이 될 수 있는가? 무릇 법이나 사상이란 것은 특정한 사회정치적 조건 속에서 만들어져 일정기간 그 효력을 유지하다가 조건이 바뀌면 새로운 것으로 대치되든가 소멸되기 마련이다. 국가보안법은 좌우대립이 극심했던 시기에 이 땅의 지배집단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한시적 법률이다. 이 법률이 준거하고 있는 사상적 스펙트럼은 지극히 협소하고 편향된 것이어서 가히 한 나라의 중심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보안법 체제가 반세기 이상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강대국 미국의 보호와 역대 정부의 강력한 통제와 감시 덕분이다. 냉전이 해소된 지 오래되었지만 지금 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들의 집권당이나 제1 야당에는 ‘사회주의적’ 강령을 가진 정당들이 수두룩하다. 게다가 종교적 색채가 짙은 정치체제가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널리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일 것 같았던 미국은 언제라도 한반도를 미국의 세계제패 전략을 위한 조커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태도를 서슴지 않고 내비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생존과 적응을 위해서라도, 대한민국의 사상적 스펙트럼을 중도좌파까지는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편협한 사상적 잣대는 무고한 사상범만 양산하여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킬 뿐이다.

다음으로, 국가보안법 체제는 과연 예측 불가능한 세계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 국가보안법 체제의 본질은 ‘감시’와 ‘통제’이다. 감시와 통제는 행위의 주체뿐 아니라 그 대상자마저 경직되게 만든다. 국가기관에 만연되어 있는 관치행정과 국민들의 참여불감증이 단적인 증거이다. 물론 이러한 증상의 원죄가 꼭 국가보안법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국가보안법이 마치 법 위의 법처럼 군림하며 우리 사회에 감시와 처벌의 시스템이 끊임없이 작동되도록 주도해 왔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세계로 나가 지구촌의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다 느끼는 많은 안타까움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우리의 몸과 생각을 사로잡고 있는 ‘경직성’이다. 감시와 통제 속에서 오랫동안 살다보니 저절로 그리 된 것이다. 현실을 개척하는 데 쓰여야 할 창조적 에너지의 많은 부분이 전혀 비생산적인 곳에 쓰이고 있으니 국가적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공산권의 몰락은 바로 이 유연성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가안보란 총체적 개념이다. 사상이나 법률로 규정한다고 하여 지켜지는 그 무엇이 아니다. 국민들로 하여금 제각각 지니고 있는 창조적 에너지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넓고 안전한 광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국가안보는 이러한 에너지의 흐름이 변화무쌍한 지구 전체의 에너지 흐름 속에 조화롭게 자리 잡을 때에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편협한 냉전시대의 유물 속에 과연 이 에너지의 자유스런 흐름을 담아낼 수 있을까? 남북한 공히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황대권 생태공동체운동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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