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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3.31(수) 18:27

국회와 영성


△ 황대권 생태공동체운동센터 대표

촛불시위도 끝났고 탄핵역풍으로 인한 야당의 혼돈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지난 3월12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20일 동안 이 나라에는 탄핵과 관련하여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말잔치가 벌어졌다. 물론 탄핵 대상자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말도 있었지만 압도적인 다수가 탄핵안을 가결시킨 국회와 국회의원을 비난하였다. 아직도 많은 국회의원들이 법대로 했는데 왜 이렇게 난리들인가 하고 몹시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회기 내내 의원들의 월권과 탈법 행위를 지켜본 국민의 눈에는 “방귀 뀐 놈이 성을 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 판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려고 늘 노심초사하는 정치인들에게 이러한 경향은 특별하기까지 하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아니라고 보는데 정치적 야심에 빠져 있는 그들만은 그렇다고 확신을 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권력만 잡으면 달리 생각하고 있는 국민들을 내 편으로 돌릴 수 있으려니 한다. 아니 권력을 통하여 자신이 옳았음을 입증하려고 한다. 작년에 대선 불법정치자금 수사가 본격화되자 야당은 선거에 진 것이 유죄라고 공공연히 떠들어댔다. 게임의 룰이야 어떻건 오로지 이기는 것만이 선이고 정의인 것이다. 그러자니 정치력의 대부분을 정적을 죽이는 일에 쓰게 된다.

지난해 이맘때 국회 대회의실에서는 대한민국 국회의 이미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낯선 풍경이 벌어졌다. 평화운동가이자 고명한 명상지도자인 틱낫한 스님의 공개 강연이 있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는 각 당의 대표를 비롯하여 많은 국회의원들이 참석하였다. 그때 스님께서는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지만 주된 내용은 자비의 마음을 내어 상대방을 용인하고 끊임없이 대화를 나눔으로써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지 못하는 곳에서 자비의 마음을 내라는 얘기가 과연 먹혀들어 갈지 의심스러웠지만 강연이 끝난 뒤 무척 감명을 받았다고 소감을 말하는 의원들도 있는 것을 보면 아주 엉뚱한 행사는 아니었지 싶다. 필자는 파행으로 얼룩진 16대 국회를 지켜보면서 지금 우리 국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이성의 회복이 아니라 영성의 회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촛불집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국회가 미쳤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밉다 하더라도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감정적으로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지를 만큼 어리석은 우리 국회의원이 아니다. 그들은 충분히 이성적으로 계산에 계산을 거듭한 끝에 그 길만이 지금의 권력구조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기에 거사를 밀어붙인 것이다. 그들은 미친 게 아니라 계산을 잘못했을 뿐이다. 지금의 탄핵정국은 감정과 이성에만 의존하는 정치가 얼마나 허약하고 불안정한 것인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영성의 정치란 무엇일까 그것은 “네가 있음으로써 내가 있다”는 연기(緣起)의 법칙을 깨우치는 것이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네가 살아야 나도 살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상생의 정치이고 영성의 정치이다. 깨달음이 깊어지면 그 대상이 사람을 넘어서서 모든 생물과 사물에게까지 확장되고, 이 확장된 의식 속에서 스님께서 말씀하신 자비의 마음이 절로 우러나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영적으로 한 형제요 자매이며 서로에게 존재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정쟁과 싸움은 이 틀 속에서 벌어지는 존재의 다양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연기의 법칙을 무시한 채 너 죽고 나만 살자는 식으로 나가게 되면 서로에게 공멸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작게는 가정의 파괴에서 정치 사회의 파괴로, 더 나아가 생태계의 파괴로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국회의원들이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국회의장의 신호로 함께 명상의 시간을 갖고 때때로 덕이 높으신 수행자를 모셔다 영성교육을 받는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이 한결 밝아지지 않을까 하는.

황대권 생태공동체운동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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