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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2.29(일) 18:02

3·1운동으로 돌아가자


오늘은 3·1절, 85년 전 만세소리가 드높았던 날이다. 소수의 친일파를 제외하고 계급과 신분을 넘어, 서울과 지방을 넘어, 그리고 젠더를 넘어, 거족적으로 들고 일어난 이 운동은 하나의 기적이다. 헌병경찰로 대표되는 1910년대 일제의 무단통치는 식민지지배의 근대성마저도 벗어던진 고대의 정복에 준하는 것이었다. 알다시피 헌병은 군인을 검속하고 경찰은 민간을 다룬다. 일제는 이 구분도 폐기했으니, 당시 조선은 일종의 군사적 계엄 상태에 포획된 셈이다. 박정희와 그 희극적 모방자들의 군사독재 시절, 계엄령의 공포를 경험한 세대는 짐작할 터인데, 이 무서운 계엄 아래에서 흰 옷 입은 ‘백성’들이 거리로 장터로 쏟아져 나와 죽음과 고문의 위협을 무릅쓰고 그것도 맨손으로 그처럼 지속적으로 만세를 불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경이로운 대중의 돌연한 출현은 그만큼 우리 민중이 일제의 지배를 용납하지 않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일제의 무단통치 자체가 이런 조선 민중에 대한 공포의 소산이 아닐까 당시 조선인이 일제의 지배를 용인했다면 일제가 헌병경찰이란 세계적인 특허 품목을 고안했을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불충분하다. 마음으로 일제를 거부하는 것과 집단적 행동으로 이행하는 것 사이에는 큰 틈이 있다. 고종의 죽음을 통해 새삼 환기된 망한 나라에 대한 통곡이 새 나라에 대한 집합적 꿈에 불을 당긴 것인가

어떤 이는 3·1운동의 이 준비없는 무모성을 비판하기도 한다. 1차대전(1914~18)의 출구에서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는 새로운 이상주의가 고양되면서 민족자결주의도 제창되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패전국 식민지들에만 적용되었을 따름이다. 일제는 1차대전 승전국이었다. 그런데 승전국 일본의 식민지 조선에서 세계 피압박민족 해방운동의 새로운 봉화가 들불처럼 타올랐다. 3·1운동은 현실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위대하다. 아니 그 무모함이야말로 3·1운동의 알맹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경건해진다. 이 순결한 무모함으로 3·1운동은 우리 민족운동의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다. 모든 운동의 지류들이 3·1운동으로 합수(合水)하여 우리 운동의 불멸의 상상력의 원천으로 들어올려졌던 것이다.

3·1절 아침, 나라 안팎을 바라보니 더욱 한심하다. 이제는 남북관계도 예전처럼 극렬한 대립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고, 한국도 군사독재시절을 통과하여 계엄령이 거의 유물이 될 정도로, 여러 면에서 훨씬 평화롭고 안정된 때임에도 우리는 왜 불안할까 꿈에도 그리던 나라를 되찾아 그 동안 파란의 우여곡절을 거쳐 이만한 사회를 만들었으면 이제는 좀 중장기적 안목으로 근사한 나라 만들기에 합심을 할 때도 되었건만 왜 여전히 분열적인가 마침 안중근 의사가 1908년에 기고한 글이 발굴되었다. “슬프다, 우리나라가 이 참혹한 지경에 이른 것은 다름 아니라 불합병(不合病: 화합하지 못하는 병)이 든 연고로다.” 그 불합병이 참 지독도 하다. 특히 정치계는 병통이다. 요즘 검찰의 정계 수사를 보노라면, 진부한 얘기지만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멀지 않다는 희망을 품게도 된다.

그런데 한국의 고질적인 정치적 부패는 우리의 낙후한 정치구조에 연유한 것이기에 탁탁 털면 걸리지 않을 정치인이 거의 없을 것이다. 정치개혁을 위해서 분열과 부패를 조장한 정치인들을 잘 가려서 일벌백계(一罰百戒)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 전체를 거의 무차별적으로 대상화하는 일은 혹 정치에 대한 전면적 환멸로 이끌 우려가 없지 않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개혁의 마지막 격동이 진행되는 이 때, 오랜 진통 끝에 열린 6자회담에서도 희망의 조짐이 보인다. 우리 모두 3·1운동의 그 알맹이로 돌아가 그 운동에서 잉태된 상상의 나라를 실현하는 일에 힘을 모으자!

최원식/인하대 문과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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