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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2.01(일) 18:48

지방분권과 지방방송


인천을 주 근거지로 둔 경인방송(아이티브이) 사태가 좀체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퇴진을 요구하는 노조의 파업에 사장이 물러난 가운데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직장폐쇄가 불가피하다는 엄살의 으름장 속에 갑신년 정초부터 파란이 중중하다. ‘지방화와 균형발전시대 선포식’이 1월29일 정부대전청사에서 대통령을 비롯해 각계인사 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는 보도를 보니 더욱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분권화를 향한 새 걸음이 내디뎌지는 이 시대에 지방여론의 구심점이 되어야 마땅한 지방방송이 분규에 휩싸여 파행을 거듭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 인천시민들은 운동단체들을 제외하곤 이 사태에 대체로 무심하다. 중앙과 지방의 언론·방송계가 이 현안에 깊은 관심과 높은 연대를 나타내는 것에 비하면 더욱 기이한 느낌이다. 이 심각한 사태가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탓도 없지 않으나, 그 사이 아이티브이가 인천시민으로부터 탈출한 것이 더 큰 원인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1997년 10월 아이티브이가 개국했을 때, 시민들이 은근히 가슴에 품었던 어떤 자부심은 어느 결에 가뭇없이 사라졌다. 대체로 지방의 사정이 그렇지만 특히 당시 인천의 언론상황은 열악했다. 박정희 독재의 언론통제의 일환으로 강제 시행된 1도1지제(一道一紙制)에 의해 1973년, 언론의 전통이 오랜 인천은 신문을 수원에 넘겨줌으로써(당시 인천은 경기도 소속이었다), 신문 없는 암흑시대를 맞이했다. 6월항쟁(1987)을 고비로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1988년 인천에 신문이 다시 발행되었다. 요즘은 지방지가 난립해서 문제지만 당시는 감격적인 일이었다.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방송통제도 완화되면서 1994년 공보처는 지역민방 설립계획을 발표하였다. 그런데 광역시 가운데 인천은 제외된 채였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인천티브이방송 설립촉구 범시민대책협의회(인방협)를 발족하여 시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면서 활발한 운동을 벌여 마침내 1996년 설립이 확정되었던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탄생했으니, 아이티브이에 대한 기대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티브이 역시 인천시민의 방송이 되겠다는 다짐을 각별히 두어, 아이티브이가 서울 기존 방송사들의 견제에 고전을 면치 못할 때마다 강력한 후원자 역할을 맡아 나서기도 하였던 터다.

아이티브이 출범 초기를 생각하면 후배가 생각난다. 당시 그는 서울의 잘나가는 기획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나를 찾아와 아이티브이에 지원할까 한다는 것이다. 지방을 가꿀 인재가 부족한 인천을 걱정하던 차, 그의 결단이 너무나 대견했지만 나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서울을 버리고 인천에 온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젊음을 바쳐 일할 마땅한 곳이 없어 인천을 떠났지만 이제 인천에 도전적인 일터가 생겼으니 인천으로 오겠다는 그의 뜻이 하도 결곡해서 나 역시 기쁘게 동의하였다. 그는 아이티브이에 입사해 참으로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이태를 견디더니 어느 날 상경하겠다고 내게 말했다. 한편 서운했지만 어서 떠나라고 위로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후배의 아이티브이 퇴사 이후 아이티브이에 대한 나의 관심도 급속히 식어갔다.

아이티브이는 왜 이 모양이 되었는가 설립 초기의 다짐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시민운동의 결실로서 출범한 비상한 기원(起源)을 잊고 서울방송을 따라가려는 경영논리에 사로잡혀 오히려 게도 구럭도 다 놓친 형국이다. 시민들도 너무 소박했다. 설립에 급급하여 시민방송의 방향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방책을 마련하는 일에 소홀했다. 이익을 좇는 자본의 맹목성을 제어할 공공성이 관철될 구조의 문제를 찬찬히 따지는 작업을 간과했던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다. 아니 차라리 좋은 때다. 노·사와 시민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공공적 민영방송이라는 새 모델을 창조함으로써 아이티브이가 거듭나는 길을 마련한다면 우리 방송 전체의 신기원을 이룩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아이티브이가 시민운동적 출범의 기억을 회상하면서 분규를 넘어 분권화시대의 기수로 재생되기를 간곡히 기원한다.

최원식/인하대 문과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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