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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12.11(목) 16:28

개혁과 통합, 배타적 아니다


다행히 물류대란도 한고비를 넘었다. 대통령의 방미로 북핵문제도 한숨을 돌리게 된 듯싶다. 일도 많은 나라에 사건도 끊임없이 터지는데, 아슬아슬 벼랑 끝까진 갔다간 신통하게도 고비를 잘도 넘어가니 참으로 '달나라의 장난' 같은 나라다. 민주당의 신당논의가 백가쟁명을 이루더니 '신당추진워크숍'(5.16.)을 계기로 가닥을 잡아간다. 물론 구주류측일각에선 '민주당 사수'를 외치며 신주류의 창당추진에 제동을 걸고 싶어 하지만 이미 대세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통과했다. 민주당의 '분열'을 즐거워하는 한나라당에선 이때를 놓칠세라 '국가위기'의 해법을 제시하진 않고 권력투쟁에 몰두한다고 양측을 모두 싸잡아 비난한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지금 이런 얘기 할 때인가 두번이나 다 잡은 대어를 놓치고도 여전히 세상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한나라당이야말로 겸허한 자기개혁에 몰두할 때일 것이다. 만시지탄은 없지 않지만 민주당워크숍을 고비로 한국사회의 가장 큰 고질의 하나인 정치분야의 개혁이 본격적으로 시동된 것을 나는 크게 환영한다.

노후보의 당선은 선거혁명이었다. 그것은 5.16쿠데타 이후 거의 반세기에 걸쳐 정착된 보수적 사회구조에 대한 항의였다. 그런데 그 항의는 범독재세력뿐만 아니라 그에 대항했던 정치세력, 즉 지역구도에 기반한 2김보스정치에도 겨누어졌다. 군부독재와 투쟁하면서 문민시대를 열고 정착시킨 김영삼·김대중, 두 지도자의 업적은 높이 평가해 마땅하지만, 그들의 정당지배구조 또한 충분히 민주적이지는 못했다. 싸우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다. 어떤 점에서 그들은 박정희체제의 적대적 파트너인지도 모른다. 개발독재세력과 민주세력 사이의 긴 싸움의 과정에서 탈권위적인 '젊은 국민'이 생성되었다. 그들이 선거를 통해 그 동안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규율해온 개발독재 모델의 청산을 요구한 것이다. 세상은 눈부시게 변했는데 그 변화를 반영하기는커녕 오히려 찍어누르는 이 무쇠뚜껑을 젊은 에너지가 마침내 열어버린 것이다.

민주당은 대선 직후 이 '젊은 국민'의 요구에 입각하여 즉각적으로 정치개혁에 착수했어야 했다. 께임에 패배한 구주류가 그 규칙에 깨끗하게 승복하여 당권을 신주류에 내놓고 정치개혁을 구상껏 해보라고 맡겼다면 얼마나 멋있었을까 그리 되었다면 뒤늦게 '개혁신당이냐, 통합신당이냐' 하는 구차한 논의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실 개혁과 통합은 상호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개혁세력의 대통합은 우리 시대의 지상명령이다. 승리한 뒤가 어렵다. 양적으로는 적을지라도 기득권층은 현실적으로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현대사는 그 비통한 예들을 너무나 풍부하게 보여준다. 해방 직후 민족운동진영이 생사를 건 투쟁에 돌입하여 나라는 분단되고 남한에선 결국 친일세력이 사회지배층으로 부활했다. 4월혁명 후 집권한 민주당은 신구파 갈등으로 쿠데타를 자초하였다. 박정희가 암살된 직후에는 민주화가 다된 듯 2김이 분열하여 결국 신군부의 집권을 초래했다. 6월항쟁 직후는 또 어떤가 다시 2김이 분열하여 신군부의 집권을 연장시키지 않았는가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자들의 어리석은 반복을 이제는 끊어야 한다. 예나 이제나 범민주세력 또는 범개혁세력의 분열은 위태롭다. 정치개혁의 길은 멀다. 먼 길에 동반할 범개혁세력의 외연을 두텁게 두텁게 쌓아가야 할 신주류의 책무가 무겁다.

어느 모임에서 정치복원이 정치개혁의 지름길이라고 지적한 김원기고문의 말을 인상깊게 들었다. 정치는 예술이라고 정치가들은 흔히 말하지만 그런 정치가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큰 경륜을 품고 천근같은 무게로 말을 아끼되 지혜로운 실천으로 일을 만들어내는 진짜 정치를 정치개혁을 이끌 신주류에 기대하고 싶다.

최원식/ 인하대 문과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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