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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12.11(목) 16:24

찍기 수능을 재고하자


수능 도입 이후 처음으로 복수정답을 인정하는 사태로 가뜩이나 입시철이면 어수선한 터에 머릿살이 더 아프게 생겼다. 재채점에 따른 그 복잡한 절차며, 조막 점수의 변동에 희비가 엇갈릴 학생과 학부모들의 마음고생이며, 그에 불복하는 수험생들의 항의와 소송 사태며, 냄비 끓듯 일어날 중구난방의 논란이며, 생각만 해도 어지럽다. 이 얼마나 큰 국가적 낭비인가

국어선생이지만 사실 나는 수능 문제지를 잘 안 본다. 봐야 골치만 아픈데, 솔직히 정답 맞힐 자신도 별로 없다. 하 요란해서 일부러 묵은 신문을 들춰 그 문제를 한번 들여다봤다. 지문으로 제시된 백석의 시 ‘고향’은 마치 처음 본 듯 낯설다. 대표작은 아니다. 그럼에도 찬찬히 읽어보니 따뜻하게 마음에 위로를 주는 시여서 잘 뽑았다는 생각이다. 잠깐이나마 고단한 수험생들도 이 시에서 위안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이 시를 테세우스 신화와 비겼을까, 의문이다. 정답이 ‘미궁의 문’이든 ‘실’이든 그게 백석의 시와 무슨 관계란 말인가 타향에서 가벼운 병을 얻어 앓아누운 시적 화자에게 왕진 온 점잖은 한의사가 고향을 묻고 그곳의 아무개를 아느냐고 질문하고 그래서 서로를 잇는 끈을 찾아내는 전형적인 한국식 대화를 백석 일류의 조사(措辭)로 순하게 푼 이 시는 이만큼 따듯하게 아름답다. 이 시에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살벌한 테세우스 신화를 가져다대는 것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다.

이제는 이런 식의 수능을 재고할 때가 되었다. 한날한시에 전국의 수험생을 한 교실에 몰아넣고 이런 객관식 문제풀이에 골치를 썩게 함으로써 오히려 한국어문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시험은 그만했으면 싶다. 동료 교수의 말로는 수능 한 문제당, 값이 천만원짜리란다. 이 무슨 낭비인가 은밀하게 출제교수들을 뽑아 비밀장소에 감금하고 문제를 짜내는 군사작전식 수능 출제는 그야말로 ‘고비용 저효율’의 대표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왜 이런 낭비가 고쳐지지 않을까 일단 한번 제도나 기관이 만들어지면 좀체 폐지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로 말미암아 밥 먹고 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란다. 언젠가 선배에게 이 말을 듣고 의문이 눈처럼 녹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참 날카로운 말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시대에 만들어진 무수한 ‘어용단체’들이 지금도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실감이 난다. 수능 역시 거대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각급 교육관계 연구소, 사범대, 교육대, 각급학교, 각종 학원, 교과서 및 참고서 출판사, 방송사, 인쇄소, 제지사, 볼펜장수, 과외지도사, 아르바이트 학생에 이르기까지 아주 정교하고 복잡한 먹이사슬이 촘촘히 얽혀서 돌아간다. 오죽하면 마피아 소리가 다 나오지 않는가 이 고리들 속에 엄청난 돈이 춤춘다. 살판이 났다. 그러니 개혁이 될 리가 없다.

이처럼 엄청난 돈이 돌아가는데도 한국 교육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는가 공교육에 대한 기대를 애초에 접으면서 사교육이 범람한다. 고액 과외를 근절하기 위해 시민들의 고발을 받는다는 기상천외한 방침이 발표되기조차 한다. 국민을 밀고자로 만드는 이런 조처 자체의 반도덕성은 둘째치고 과연 그게 고액 과외를 근절하는 데 유효할 것인가 아마도 아무도 믿지 않을 터이다. 정말 교육문제를 생각하면 어디서부터 가닥을 잡을지 난감해진다.

시험이라는 제도를 없애면 좋겠지만 그건 먼 훗날의 일일 터이고, 우선 수능부터 개혁할 방안에 대해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아니 이미 좋은 방안들은 있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식으로 고전에 대한 다양한 독서체험에 입각한 글쓰기 능력 위주로 개편하는 일을 진지하게 생각할 시점이다. 객관식 찍기에서 벗어나 학생들 스스로 독자적으로 독해하고 독자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21세기가 요구하는 창조적 인간을 기르는 지름길이 아닐까?

인하대 문과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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