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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문건을 보며

4년 전 <한겨레>는 큰 위기를 겪었다. 96년 10월께부터 정부투자기관과 대기업들이 뚜렷한 이유 없이 광고를 취소하거나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상황이 몇개월 동안 지속됐다. 그 광고중단이 안기부의 공작에 따른 것이었음이 4년만에 당시 안기부가 만든 문건으로 입증됐다. 이런 광고탄압은 안기부의 수사권 강화를 목적으로 한 안기부법 개정에 <한겨레>가 강하게 반대하는 데 대한 보복 차원에서 감행된 것이다. 문건을 접하면서 진실에 대한 외경과 함께 우울한 현실에 대한 착잡함을 함께 느끼게 된다.

우선은 자성이 앞선다. 광고탄압 당시 <한겨레>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그때에도 안기부 소행이라는 심증은 있었다. 일부 기업의 실무자들이 안기부 압력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물증이 확보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회사는 신중하고도 장기적인 대응 쪽을 택했다. 그러나 인권의 문제에서나 부당한 권력에 대한 대응에서 앞뒤 재지 않고 해왔던 전통대로 크게 한바탕 싸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당시 <한겨레>가 강고하게 저항하며 광고탄압을 정치문제화했으면 안기부법 개정안의 통과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후회가 남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문민정부에 대한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93년 자신이 공작정치의 최대 희생자였음을 강조하면서 안기부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에 따라 그해 여야는 국가보안법 제7조에 규정된 반국가단체 찬양·고무 등과 10조의 불고지죄에 대해 안기부의 수사권을 배제했다. 그러나 임기말이 다가오고 대선이 가까워 오면서 정권안보와 정보정치를 강화할 필요를 느끼자 3년만에 이를 날치기를 통해 되돌려 버렸다. 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겨레>가 이를 앞장서 반대하자 광고·구독·대출을 막으며 탄압을 자행한 것이다. 이 사태는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데서 “설마 문민정부인데 그럴 리가…”라는 식의 온정주의는 금물이며 권력의 속성을 냉철하게 보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한겨레>는 그동안 남북관계 보도에서 사실보도에 충실하면서 남북의 화해와 민족의 통합에 도움이 되는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해왔다. 안기부 문건은 <한겨레>의 이런 노력을 `친북보도' `좌경편향'으로 매도하며 심지어 “로동신문 서울지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음해했다. 나아가 `친북보도·좌익세력 지원에 대한 대책'이라며 구독과 광고, 대출을 하지 말도록 정부기관과 대기업, 은행에 압력을 넣었다. 정보기관은 과거 정권이나 정부정책에 비판적이면 빨간색을 칠하며 공산주의적이라거나 좌경으로 매도해 처벌해왔다. 그 과정에서 정치공작과 인권유린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안기부 수사권 논란도 이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이번 문건은 이런 안기부의 행태가 아직 그대로 살아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안기부법 재개정 문제는 시퍼렇게 살아 있는 과제요, 지금도 진행형인 것이다.

이 문건이 드러난 경위 또한 드라마틱하다. 월간조선은 이를 `최근' 입수했다고 밝혔다. 시기상으로 <한겨레>의 언론개혁 시리즈에 대한 제도언론들의 맞대응이 관심사인 때다. 또 문건 내용은 `<한겨레>의 보도성향, 광고수주 비리, 불법적 기부금품 모집' 등 제도언론의 구미에 딱 맞는 것으로 구성돼 있다. 이 점에서 볼 때 문건의 입수나 공급의 커넥션 또한 예사롭지만은 않을 것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국가기관은 <한겨레>의 논조를 매카시적으로 음해하면서도 이것이 잘못이라는 의식도 없고, 금지된 언론사찰과 정치공작 등 직권남용을 저지르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언론은 또 이를 문제를 삼기는커녕 도리어 <한겨레>를 문제시한다. 이야말로 사회개혁과 언론개혁이 절실한 이유를 웅변하는 것이다. 국민의 처지에서 큰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문건이 드러남에 따라 정부가 취해야 할 조처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먼저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조사 결과에 따라 민간 언론사에 끼친 손해를 배상하고 관련자는 직권남용으로 엄히 처벌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의 개폐가 논의되는 마당에 수사권 남용 등으로 개폐 논의의 빌미가 된 기관에 수사권을 되돌려준 모순도 해결해야 한다. 이참에 정보기관의 직무를 대외정보 수집에만 국한하는 등 정치활동 금지를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요원들을 상대로 시대변화에 맞고 상식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를 재교육하는 일도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편집부국장 tum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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