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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시각 2000년02월24일19시22분 KST

    [조상기칼럼] 국민이 지역당원인가

    새천년 들어서도 여전히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욱 강고하고 대담하고 교묘해졌다. 이제는 지역감정을 정략적으로 제조하고 응용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과거에는 지역주의의 생성에 역사적, 정치적 연원과 상황이 있었다. 또 일말의 주저함도 있었다. 지금은 아예 그런 건 염두에도 없다. 오직 필요하면 생산할 뿐이다. 지역주의야말로 최고의 정치술수요,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정치란 이를 능란하게 구사하는 프로들의 활동무대에 불과하다. 참으로 나라와 민족의 앞날이 암담하다. 정치인이 무섭다.

    새해들어 일어난 정치적 사건치고 지역주의를 겨냥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음모론과 야당선언, 여권 공조파기로 이어지는 자민련의 정치행위가 그렇다. 이는 충청표를 결집하기 위한 일관된 총선전략인은 두말할 것도 없다. 정형근 의원의 검찰 불출두 소동도 마찬가지다. 지역방정식이 아니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지역에서는 이것이 투사로 통하고 당선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지역주의가 법 위에 존재함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각 당의 보스들이 시민단체의 낙천운동 대상자들을 버젓이 공천한 것도 그렇다. 이른바 `텃밭'의 표가 감히 어디로 가겠느냐는 오만의 표현인 것이다. 공천에 불복해 신당을 추진하는 것은 또 어떤가. 여론조사에서는 72.8%가 그 중진들의 탈락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음에도 그들의 생각은 다르다. 지역주의에 불을 붙이고 바람만 불면 조화는 일어난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지역감정에 불을 당기는 수법도 어느 사이 정형화했다. 우선 계기를 잘 잡아 핍박받는 상황과 저항하는 자세를 연출한다. `누구누구 죽이기'니, `탄압'이니 하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자민련이 “스스로 야당이 된 게 아니라 민주당이 우리를 야당으로 내몰고 있다”며 야당을 선언한 것이 전형적인 예다. 이는 자신의 흠을 감추는 데도 적격이다. 사람을 잡아먹은 호랑이도 쏘아놓고 보면 불쌍하다는 식의 동정심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은 일사천리다. 지역정서를 고려해 저항의 표적을 명확히 하고 명분을 세운다. 지역표를 크게 모을 수 있는 리더십이라도 있다면 금상첨화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총선가도의 제4신당 돌출은 이의 결정판이다. 낙천을 계기로 잡아 “대권전략 차원에서 영남권 맹주들을 숙청하기 위해 공천이 아니라 사천을 했다” “탈락이 아니라 배제됐다”고 비명을 지른다. 영남권이라는 지역기반이 있겠다, 낙천자나 정치 지망생은 넘치는 판이니 세력화는 일도 아니다. 다만 대권을 꿈꾸는 야심가들이 모여들었지만 폭발력이 없어 리더십에 미흡한 점이 있다. 그러나 지역의 대부로서 와이에스가 막후에서 지원하는 모양새를 갖췄으니 그런대로 할 만하다. 바람이 슬슬 분다. 바야흐로 시민단체의 명단에 올랐던 낡은 정치인들은 신당의 중진으로 부활하고 있다.

    자, 이러니 이번 총선도 어쩔 수 없이 지역구도로 치러질 판이다. 야당끼리 선명경쟁과 함께 누가 지역본당이냐로 첨예하게 다툴 것이다. 그러나 야당분열은 오히려 작은 문제다. 나라가 다시 지역으로 갈가리 찢어져 갈등하고 대립하면서 지역패권도 되살아날 것이 불을 보듯 훤하다. 지역대결의 상황에서는 개혁은 물론 공존과 상생의 정치는 기대할 수조차 없게 된다.

    지난 시절 이 망국적 병폐에 책임있는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오기와 몽니와 성질을 부린다. 이에는 유권자도 책임이 크다. 2월의 여러 여론조사들을 보면 국민들은 대단히 이성적이다. 출신 지역이 후보 지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낙천·낙선 운동에 공감한다, 정형근 의원의 출두거부는 정당하지 못하다, 음모론에 공감하지 않는다, 영남신당이나 무당파 연합은 반대한다는 것이 다수의 응답이요, 공론이다. 그런데도 이런 이성적인 자세가 투표장까지 이어질 것이라고는 자신할 수 없다. 선거 때만 되면 상당수 유권자가 지역주의에 휘둘려 지역당의 당원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러니 정치인들이 지역의 맹주처럼 행세하며 유권자를 장기나 윷판의 말 정도로 얕보는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 희망은 유권자인 국민 뿐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저 정치판을 바꿀 수 있는 권력도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국민이 정치개혁에 나서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반드시 물갈이를 실현해야 한다. 지역주의도 끝장내야 한다. 이를 위해 철저히 인물본위로 뽑는 것도 한 길이다. 후보 모두가 내 지역 사람 아닌가. 우리가 지역당의 당원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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