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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시각 2000년02월03일18시21분 KST

    [설] 하늘은 속지 않는다

    정치9단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의 정치바둑은 참 끈질기다. 대세가 기울어도 좀체 돌을 던지지 않는다. 틈새를 노리며 때를 기다린다. 이때 그가 흔히 쓰는 전략이 있다. 만천과해(瞞天過海)라는 것이다.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넌다'는 수법이다. 95년 와이에스에 몰리자 죽은 듯 엎드려 있다 전격적으로 자민련을 창당하기 직전에도 이 `만천과해'를 언급했다고 한다.

    그와 그의 당이 다시 이 전략을 들고 나왔다. 시민단체의 은퇴 권고를 정권 핵심과 공모한 `제이피와 자민련 죽이기'라고 몰아붙인 것이다. 이른바 음모론이다. 그러나 음모는 아무리 살펴봐도 뿌리도, 실체도, 근거도 없다. 10일이 지나도록 증거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이를 기정사실화해 연일 목소리를 높인다. 이 낮도깨비 주장의 효과는 만점이다. 사람들은 헌정 파괴, 정보·공작정치, 부정축재, 지역감정 조장 등 은퇴 권고의 사유보다는 음모론에 귀를 세운다. `집권세력에 핍박받는 제이피'가 연출되고 충청표는 속속 결집했다. 이 얼마나 대담하고도 감쪽같은 속임수요, 이 얼마나 기막힌 조화인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음모론은 사실이 아니다. 자민련이 공동정부를 유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말살 음모'의 증거를 손에 쥐고도 공조를 계속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신문은 “상황적으로 음모론이 나오게 돼 있다”고 부추긴다. 그러나 상황적으로도 맞지 않다. 청와대나 민주당이 시민단체의 활동을 시대의 흐름으로 인정하고 찬성한다고 해서 이런 사후적 지지를 사전적 음모로 둔갑시킬 수는 없다. 민주당은 거의 울상이다. 공조 복원에 애걸복걸이다. 소수정권의 처지에 무슨 `아무개 죽이기'인가. 되레 살려도 부족한 판이다.

    사회단체들 또한 음모를 꾸며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생각해보자. 정치는 푹 썩었다. 정치권 스스로의 개혁은 난망이다. 뇌사상태다. 국민의 절대다수는 “다 바꾸라”고 난리다.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절대적이다. 모든 것은 공개리에 진행됐다. 이런 마당인데 무슨 음모인가. 선거혁명은 무르익은 사회상황과 시민단체의 순수한 열정이 합쳐 이룬 도도한 흐름이다. 순금도 도금하던가. 그럴 필요가 없지 않나.

    시민 선거혁명의 순수성 때문에도 음모론의 불순함은 더욱 드러나 보인다. 새 천년 문턱의 이 선명한 대비는 극적이기까지 하다. 음모론은 단순한 거짓말 이상이다. 죄악이다. 하늘같은 국민을 속였다. 새정치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국민주권운동을 왜곡했다. 망국적 지역주의를 빚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시대흐름을 막아서는 또한번의 쿠데타가 아닐 수 없다.

    정치생명의 연장과 정치적 반사이익을 위해 시민혁명의 순수성과 도덕성을 흠집내는 이런 음해를 감행해도 되는 것인가. 한낱 선거전략 차원의 거짓말로 나라의 새 기운을 흐리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새 천년에도 이런 낡은 행태가 판치도록 놔둘 수는 없다. 음모론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넘어갈 수 없다.

    만천과해라지만 바다를 건넌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늘은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다짐하는 성소이지 속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허구가 드러나면서 음모론은 자충수가 되고 있다. 또 때가 새 천년의 시작이다. 정치개혁의 기운이 생동하고 있기도 하다. 선거혁명의 기세는 태풍같다. 이러니 바다를 건너기는커녕 도리어 음모론 때문에 그물에 걸린 처지가 되기 십상이다. 옛 바둑책의 한 대목을 빌리자면 바로 유어촉망(游漁觸網)의 형세다. 실패한 쿠데타로 가고 있다.

    지난해 내각제 개헌이 물건너갔을 때 제이피 바둑의 대세는 기울었다. 정치적 존재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그때 돌을 던져 나라의 진운을 열었다면 길이 명예로웠을 것이다. 던질 때 못 던져 결국 은퇴를 권고받는 욕을 당했다. 그러나 이때라도 물러서 정치개혁의 밑거름이 되었다면 존경을 한몸에 받았을 것이다. 그는 이때마저 놓쳤다. 오히려 음모론으로 반격에 나서 국민과 맞섰다. 이제는 책임을 져야 한다. 어찌 보면 돌을 던질 또 한번의 계기가 온 셈이다. 음모론에 책임지고 은퇴하시라. 이제라도 박수는 받을 것이다. 편집부국장 dum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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