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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2.08.29(목)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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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가 남긴 것/ 이원섭


장상씨에 이어 장대환 총리서리가 거푸 국회의 인준 절차를 통과하지 못했다. 청와대에서 엄포를 놓았듯 국정공백 사태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국정에 차질이 빚어지고 김대중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도 가속화될 것같다. 정치권이 가파르게 대치할 가능성도 커졌다. 한나라당이 ‘거대야당의 오만’이란 후폭풍을 염려하면서까지 인준에 반대한 것은 민심반영이란 표면적 이유말고도 대선을 염두에 둔 복잡한 정치공학이 총동원됐을 터이다. 하지만 야당의 정략을 탓하기에 앞서 도덕적 흠이 큰 사람들을 내세운 잘못을 먼저 자책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다.

의원들에게 자유투표 형식이 아닌 당론으로 찬성이나 반대를 강요한 아쉬움이 있지만, 총리 임명동의안 부결이 던진 역설적 교훈은 크다. 국민 처지에서 보면 인사청문회가 검증 기능을 제대로 수행한 것이다. 당장 총리공백이 문제가 된다고 해서 도덕성이나 자질 면에서 흠결이 드러난 사람을 앉히면 두고두고 그것이 기준이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부정적 여파가 너무 크다.

처음일수록 기준이 더 까다롭고 엄격해야 하며 실제 그렇게 진행된 감이 있다. 흔히 말하는 일벌백계니 타산지석이니 하는 게 그런 것 아니겠는가. 전처럼 권력자 한 사람에게만 잘 보이면 된다는 생각도 이제 떨쳐버려야 한다. ‘제도를 통한 민주주의’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셈이다.

‘청부’ 찾아보기 힘든 풍토

도덕성 시비가 핵심 변수가 된 총리 청문회는 우리 모두에게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인준청문회를 거쳐야 할 고위 공직자가 되려는 사람은 물론이려니와, 인준 표결에 참여한 의원,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본 국민 모두에게 두루 자신과 주변을 성찰하게 만들었다.

두 총리서리의 잇딴 낙마는 그동안 검증 없이 무사통과해온 우리 사회의 취약점이 온전히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소위 한다하는 상류층, 특권층, 부유층, 지도층, 기득권층, 지배층지식층 하는 말들이 지닌 사전적 의미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머리에 어렴풋이 그려지는 상은 거의 비슷하다. 탐욕과 가식, 도덕적 해이는 선비정신이 빠진 양반계급을 연상케 한다.

특히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청빈’한 사람은 더러 있으나 ‘청부’를 쌓았다고 인정 받을만한 사람은 드물다. 그런 사회적 풍토가 조성되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명예도 권력도 늘 정당성을 의심받아왔다.

일각에서는 인사청문회의 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지게 너무 높거나 진행 방식이 약점캐기식이라고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잘 나가는 사람에 대한 일반의 시기심이나 추락을 즐기려는 천박한 대중심리에 영합해 계층간 위화감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이렇게 망신을 주다보면 과연 누가 남겠느냐는 항변은 그러나 괜한 엄살이며 협박일 뿐이다. 가치가 충돌하는 과도기적 상황에 놓여있긴 하지만, 일부러 골탕먹이려 들지 않는다면, 지금 정도의 청문회 기준을 통과할 인사는 얼마든지 있을 터이다. 그런 항변에는 기준을 낮춤으로써 심리적 위안을 얻고 면죄부를 남발하려는 꾀가 스며 있기 십상이다.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청문회 대상을 늘려야 한다는 그동안의 사회적 합의가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총리 외에 국정원장 국세청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등 핵심 실세들을 청문회 대상에 포함시키자는 기왕의 합의가 흔들려선 안 된다.

국정원장 등 대상 더 늘려야

난국을 해결하는 첩경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사심을 버리는 것이다. 총리 인사를 국면전환용이나 민심수습용으로 쓰려하지 말고, 건전한 상식에 맞춰 합리적으로 운용하면 될 터이다. 한두번 엄격히 거르다보면 자격미달자는 사전 검증과정에서 떨어져 나가거나, 본인 스스로 사양할 것이다. 선례가 쌓이면 전통이 된다. 사전 검증 기간을 늘리고, 특히 본인의 동의를 얻어 검증을 해야 실수가 없다. 자신의 흠은 본인이 가장 잘 안다. ‘깜짝인사’가 효능을 발휘하던 시기는 지났다.

사전검증 실패는 기술적 허점도 있지만, 인사권자의 의지 부족 탓이 더 크다. 국민이 기대하는 도덕적 수준이나 잣대는 생각지 않고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안이한 판단이 일을 그르친다. 혹시 ‘이번에도 또 거부할 테냐’는 식의 오기를 부려 같은 유형의 인사를 내세우거나 모양새에만 집착한다면 국민을 볼모로 삼는 도박이 된다. 같은 돌부리에 거푸 넘어지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 된다.

이원섭 논설실장 w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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