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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2.08.15(목)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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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시간이 넉넉치 않다/ 이원섭


8·15 민족통일대회 참석차 북한 고위급 인사 116명이 서울에 와 있다. 학술, 문화, 종교 등 각계 각층을 대표한 인사들이다. 이산가족 상봉 때를 빼곤 모처럼 북쪽 사람들이 서울에서 북적이는 셈이다.

사람 수도 많지만, 더욱 의미있는 것은 남북 교류가 말 그대로 오가는 쌍방교류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까지의 인적 교류는 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일방적인 것이었다. 금강산 관광은 특수한 사례니 예외로 치더라도 평양시내 호텔에서 이러저런 일로 방북한 남쪽 인사들끼리 마주치는 일도 많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도 이번 8·15 공동행사는 뜻이 깊다. 지난해 평양서 열린 통일축전에 이어 올해 8·15 행사도 민간 차원에서 함께 치름으로써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믿음을 돈독히 한 것은 통일 운동사에서 획기적인 일로 기록될 터이다.

봇물 터질 교류·협력 물결

다음달 29일 개막되는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때는 더 많은 북쪽 사람들이 올 것이다. 선수단 외에 응원단도 참가해 최소 350명 규모는 되리라고 한다. 우리로선 더 많은 북쪽 사람들이 와서 경기에 출전하고 관람할수록 반길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발전상과 다양한 모습을 직접 보고 느낀다면 민족 화해와 동질성 회복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또 북쪽 주민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경기를 즐기고, 대회를 개최한 남쪽 주민들과 간접적으로라도 소통한다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월드컵 축구대회 때 유럽 강호들을 연파하며 4강에 오른 우리 선수들의 선전 모습을 북한 텔레비전이 편집 방영해 화제를 모았다. 모르긴 해도 많은 북녘 주민들이 민족적 자긍심과 동포애를 느꼈을 터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부산 경기장에 인공기가 걸리고 북한 국가가 연주되며 ‘인공기 응원’이 펼쳐진다고 지레 경계하는 것은 괜한 군걱정이다. 한쪽에서 사소한 마찰이나 갈등이 생길지는 모른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볼 때 우리 국민들이 이를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시아경기대회라면 국제행사이므로 참가국의 국기가 걸리고 국가가 연주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우리가 경비까지 부담해가며 어렵게 초청해놓고 응원단에게 자국 국기를 흔들지 말라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억지다. 월드컵 때 서포터들이 자발적으로 나라별로 응원을 펼쳐 해당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큰 홍보효과를 거두었다. 북한 응원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도 여기에 국가보안법 잣대를 들이댄다면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지 않아도 유엔으로부터 반인권적 내용 때문에 비판 받고 있으며, 개폐 대상으로 꼽히는 보안법 규정을 들어 남북 화해 진전을 가로막는다면 얼마나 시대 역행적인가.

이 문제가 불거지는 배경에는 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을 내심 못마땅해하면서 기회만 생기면 논란거리를 만들어 남남갈등을 부추기려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냉전세력의 존재는 아직도 강고하며 곳곳에서 힘을 발휘한다.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남북관계 진전을 꺼리는 한나라당은 사사건건 뒷다리잡기에 열을 올린다.

아시아경기대회 때 ‘답방’하길

7차 장관급 회담 합의로 남북간에는 이달부터 10월까지 줄줄이 만남이 예정돼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던 북한과 미국 사이의 적대감 표출도 다소 수그러들어, 미국이 곧 대북특사를 파견하기로 하는 등 본격적인 대화가 추진되고 있다. 모처럼 외부 여건도 좋아졌을 때 남북이 호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언제 또 역풍이 불지 모른다. 상황이 좋을 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치렀는가. 북한이 체제를 걸고 추진하는 경제개혁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라도 남북, 북-미 대화가 원활히 진행돼야 한다.

북한 선수단의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참가를 계기삼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개막식에 참석한다면 자연스럽게 답방 약속도 지키고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열 수 있다. 그리해서 한반도의 평화체제가 한층 굳어지면 남쪽에서 누가 다음 정권을 맡든 민족의 앞날에 희망이 생길 것이다.

남북이 총론에서 합의하더라도 각론에서 이를 구체화하고 제도화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북한 지도부는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원섭 논설실장 w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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