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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2.06.20(목)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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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의 함성으로 …/ 이원섭


한국 축구가 일군 ‘8강 신화’ 감격과 ‘4강 도전’ 흥분이 좀체 가시지 않는다. 축구, 아니 모든 스포츠에 대한 탐닉이 빠지기 쉬운 ‘함정’임을 익히 알면서도 기꺼이 뛰어들게 하는 것이 각본 없는 드라마의 마력이다.

400만 인파가 쏟아져 나온 길거리 응원을 통해 온 국민은 하나가 되는 소중한 체험을 공유했다. ‘해방구’에서 억눌렸던 열정을 폭발시켰다. 어느 민족보다 억압된 삶을 살아왔고 고난의 역사를 지녔기에 ‘해방’의 기쁨은 더욱 크지 않나 싶다.

모든 축제가 그렇듯, 웬만한 일탈쯤은 너그러이 봐준다. 신명이 넘친 약간의 일탈은 오히려 즐거움을 키운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축제는 끝나고 일상성은 다시 회복될 것이기에, 벌어진 잔치판을 맘껏 즐기는 발산이 공동체의 건강성을 높이는 것이리라.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기 마련이다. 월드컵 축구란 큰 물결에 내남없이 기꺼이 즐겁게 휩쓸리면서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이 한둘이 아닐 터이다. 그 중에서도 아쉬운 것은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의 의미가 큰 울림 없이 지나갔다는 점이다.

하나됨 확인한 소중한 체험

세 아들 비리 혐의로 국민의 지탄을 받고 그것이 지방선거 참패로 이어져 김대중 대통령의 꼴이 말이 아니게 된 터라 모든 게 도맷금으로 폄하되기 쉬우나, 남북 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만큼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김대중 정부의 실정, 특히 온 국민을 분노하고 절망케 한 아들들 비리 문제는 호되게 나무라고 비판해야 하지만, 잘한 것은 그것대로 평가해야 온당하다.

남북 정상회담은 바로 분단 모순을 극복해 보려는 몸부림이었다. 2년 전의 감동적 장면을 돌이켜보자. 김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포옹은 총칼로 대립하던 남북이 평화와 공존을 약속한 대사건이었다. 그때보다 꼭 1년 전 그날, 1999년 6월15일 서해에서 남북 사이에 교전이 벌어져 온 국민이 불안에 떨던 것을 상기하면 얼마나 엄청난 변화요 발전이었는지 너무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 짜릿한 감동은 쉬 잊혀졌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북쪽이 서울 답방을 비롯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미국에 조지 부시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북 강경책을 쓴 것이 한반도 상황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둘이 맞물리며 사태는 더욱 꼬였다. 이 점은 우리 힘이 닿지 않는 문제였으니 일단 한쪽으로 제쳐 놓자.

그 전에,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었는데도 못한 일이 너무 많았다. 정상회담에서 일군 민족화해 열기를 내친김에 확고히 뿌리내리도록 달려가야 했는데, 엉뚱한 ‘속도조절론’에 휘말려 실기했다. 남쪽의 정치적 갈등이 민족문제에 그대로 투영됐다. 집권당은 과실을 독식하려 했고, 야당인 한나라당은 정치적 목적에서도 어떻게든 깎아내리려고만 했다.

얼마 전 또 불거진 6·15 공동선언 제2항에 관한 논란이 대표적이다.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는데도 괜한 트집을 잡고 분란을 일으킨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이처럼 뜻이 분명한 말을 놓고 남쪽이 북쪽의 연방제를 받아들였다는 해석이 어찌 성립하는가. 통일방안에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한 것이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 평화적 통일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적화통일이나 흡수통일을 두려워하던 과거에 비해 얼마나 진전된 바람직한 내용인가.

괜한 트집, 통일방안 논란

남북문제가 정략적으로 흐를 때 우려되는 것은 누가 되든 새 대통령이 취임해 남북 간에 맺은 합의를 어떻게 해석하고 지킬 것인가 하는 문제다. 혹시 한 쪽이 부분적으로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그토록 어렵게 쌓은 성과를 원점으로 돌리는 사태로 번질 수 있다.

한반도 문제는 자칫하면 일거에 무너져 흩어지는 돌탑과 같다. 조심해서 다루며 민족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그리해서 언젠가 월드컵 축구뿐 아니라 민족의 통일을 놓고 온 국민이 진정으로 기뻐 날뛰는 날이 오도록 해야 한다.

이원섭/ 논설실장w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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