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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정치'의 한계?/ 이원섭


김대중 대통령 아들들의 끝없는 추락을 보면서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5년전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가 탐욕을 부리다 감옥에 가는 것을 뻔히 보고서도 어떻게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절망하며 참담함을 느끼는 것도 그런 까닭이리라.

아들들 문제가 어느날 갑자기 불거진 것은 아니다. 고약한 소문들이 계속 나돌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아들을 불러 직접 확인했다는 얘기와 믿을만한 측근을 시켜 뒷조사를 시켰으나 별 것 아니었다는 청와대쪽 해명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아들이야 `결백'을 호소하기에 바빴다 치더라도 뒷조사를 지시받은 측근은 진상을 정확히 파악해 보고해야 했다.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듣기 좋게 허위 보고를 했다면 그야 말로 엄청난 비극의 씨앗을 뿌린 셈이다. 한번 면죄부를 주면 그것이 `기준'이 된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이 역시 미리 잡도리하지 못한 김 대통령의 허물로 귀착된다. 세 아들이 하나같이 추문에 휩싸인지라 변명의 여지조차 없다. 추문의 내용도 너저분하기 이를 데 없다. 뭐 아쉬운 게 그리 많다고 최소한의 긍지마저 내팽개쳤을까 싶다.

*잡도리 못한 대통령의 허물*

김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한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알아듣게끔 귀띔을 하는데도 노골적으로 서운해하며 멀리 했다면 다시는 그런 말을 못하게 된다. 여간해선 자식 허물을 입에 담지 않는 게 인지상정인데, 하물며 대통령에게 듣기 싫어하는 말을 반복할 수는 없을 터이다. 그런 `눈치 없는' 사람에게는 `눈치 빠른' 측근들이 대통령을 자주 만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대통령 주변에 부리기 편한 사람만 있으면 안 된다. 권력이 크면 클수록 직언을 서슴지 않아 다소 껄끄럽고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으므로, 권력자에겐 거추장스럽더라도 제도적 방어벽을 쳐야 한다고 강조해온 것이다. 인사청문회니 특별검사제니 부패방지법이니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김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민족 화해의 큰 걸음을 내딛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업적이 많았음에도 국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것은 주로 인사문제와 측근들의 부패 때문이었다. 대통령을 둘러싼 몇몇 측근들이 비공식 조직을 운영하며 폐쇄회로 안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다보니 자연 몇몇 실세들에게 돈과 권력의 쏠림 현상이 빚어졌다. 형님 아우 하면서 끼리끼리 봐주니 건강한 긴장감이 사라지고 스스로 조심하고 경계하는 마음이 무너졌다. 너나없이 부패구조에 서서히 물들어가면서 이 틈새를 최규선씨 같은 브로커들이 파고 든 것이다.

*`직언의 제도화' 필요한 까닭*

인간은 경험의 틀을 뛰어넘기가 좀체 어렵다. 이른바 `3김 정치'의 폐해로 지역주의와 보스정치, 가신정치, 권력형 부패 등을 들 수 있다면, 최근의 난맥상은 이런 낡은 정치의 한계가 총체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봐야 한다. 의례적 인사와 권력형 부패를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도덕적 불감증에 빠져든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도 모르는 새 사회의 틀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몰랐던 탓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옛날에는 적당히 묻어둘 수 있었던 일도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쉬쉬해온 김홍걸씨 추문이 불거진 발단도 최규선씨의 비서인 천호영씨가 경실련 홈페이지에 비리 내막을 시시콜콜 띄우고부터다. 과거 언론사에 제보하거나 권력기관에 투서했으나 이제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인터넷에 직접 공개한다. 합리적 근거가 있다면 과거처럼 힘이나 돈으로 막고 눌러버릴 수 없다. 그렇게 보면 투명한 사회를 지향하는 우리에게 한가닥 위안이 된다. 환경이 바뀌면 의식도 변하기 마련이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아들 문제처럼 큰 시련은 없다. 더 이상 바랄 게 뭐 있겠느냐던 그에게 가장 모진 시련이 될 것이다. 딱히 뾰족한 해결 방안도 없어 보인다. 뒤늦었지만 진솔하게 대처하는 것이 그나마 남은 명예를 조금이라도 지키는 길이다. 애틋한 아버지의 정보다 나랏일이 먼저다.

이원섭 논설실장 w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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