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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소탐대실'/ 이원섭


며칠 뒤 서울에 오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할까에 온통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상회담 뒤 공동발표문은 양국 실무진 사이에 정교하게 조율되는 것이 상례지만, 부시가 기자회견장에서 무슨 `돌출발언'을 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겨냥해 `악의 축'이란 극단적 용어를 써 파문을 일으킨 배경에 대해서는 분석이 엇갈린다. 지난해 3월 김대중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해 `약간의 회의를 갖고 있다'고 말해 찬바람을 일으킨 것에서 훨씬 더 나간 것이다. 그것도 즉흥적인 발언이 아니고 몇차례 독회를 거친 국정연설에서 나온 것이니만큼 철저히 계산된 발언으로 봐야 할 것이다. 연설 직후 참모들이 일제히 나서 북한을 몰아붙이며 비난한 것은 잘 짜여진 각본에 따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동안 부시 대통령 방한을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북-미 대화 재개의 계기로 삼겠다고 내심 별러온 정부로선 당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부시를 설득해 대북한 압박을 완화시키도록 유도하기는 커녕 현상유지에도 급급해야 할 처지에 몰렸으니 혹 떼려다 오히려 붙인 격이다. 한반도 전쟁 위기론이 실감되면서, 한가롭게 `퍼주기 타령'이나 하던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돌변한 것은 물론이다.

`악의 축' 발언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곳곳에서 터져나오자 미국은 이를 진정시키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12일 발언이 대표적이다. 파월 장관은 상원 예산위원회에서 “북한과 이란은 이라크와 다소 다른 범주에 속한다”면서 “북한과 전쟁을 시작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강경한 태도가 수그러든 것은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일희일비할 일은 아니다.

이번 `악의 축' 소동을 일으키며 미국은 여러 모로 이득을 챙겼다. 국방예산을 늘리고 미사일방어(엠디)체제 구축을 위한 토대를 닦는 한편, 국내 정치적으로 몰릴 가능성이 큰 엔론 추문을 돌리는데 일단 성공한 셈이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껄끄러운 주한미군 용산기지 이전 논란을 잠재우고, 차기 전투기 사업 경쟁에서 탈락될 위기에 놓였던 보잉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도록 하는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미국에서 경쟁사인 록히드 마틴에 밀린 보잉의 군수산업을 살리는 부담을 한국에 지운 셈이다. 전투기 뿐 아니라 앞으로 한국에 각종 무기를 판매하는데 있어 딴소리가 나오지 못하도록 여러 겹의 차단막을 쳐놓았다.

이렇게만 본다면 부시의 초강경노선은 엄청난 경제적 성과를 거둔 셈이다. 그러나 이런 효과는 근시안적 셈법일 뿐, 길게 보면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불평등한 한-미 동맹관계의 어두운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미국이 일방적 잣대로 모든 것을 재단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불신감이 커졌다. 일부 식자층과 운동권에 국한됐던 미국에 대한 반감을 널리 증폭시키는 계기가 된 것이다. 부시 진영의 이런 오만과 군사적 일방주의는 전통적 우방이던 유럽 각국들의 자존심에도 커다란 상처를 입혀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돌발변수가 없다면, 겉치레로나마 방문한 나라의 체면을 세워주는 관례에 따라 부시 대통령은 서울에서 다소 유연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두 나라는 큰 틀에서 한-미 동맹을 재확인하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며 미국은 한국 정부의 대북화해정책을 지지하는 선에서 봉합할 가능성이 크다. 챙길 것은 상당히 챙긴 마당에 립서비스 차원의 `인심'을 쓸 테지만, 그새 벌어진 틈새와 감정의 골이 근본적으로 메워질지는 의문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한-미간 힘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에 따라야 한다는 논리가 횡행한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옳다는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주권국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도 문제지만, 부당한 압력에 굴복하면 그런 압력이 되풀이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원섭/ 논설실장 w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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