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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임덕 받아들이기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로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접어들었다. 국정운영은 어찌될지, 민주당의 앞날이나 여야관계는 어찌될지 모두가 안갯속이다. 이제껏 전례가 없었던 터라 누구도 앞날을 자신있게 전망하지 못한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역대 대통령들이 대선을 앞두고 모두 총재직을 내놓았지만, 임기 1년3개월을 남겨놓고 더구나 차기 대선후보를 정하지 않은 상태로 물러난 일은 처음이다. 김 대통령으로선 임기말이 다가오면서 안팎의 협공에 밀리자 `자의반 타의반'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임기말 레임덕 현상은 모든 권력자들의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숙명이다. 특히 우리의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이를 더욱 부추기는 폐단이 있다. 재신임을 물을 기회가 원천봉쇄되고 공천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권력자에게 끝까지 고분고분할 정치인은 거의 없다. 고위 공무원들도 임기말이 되면 다음 정부를 겨냥해 좋은 자리에 가기를 꺼리고, 밖에 있는 사람 가운데 골라 쓸만한 인사들도 한사코 자리를 고사하는 것이 냉엄한 현실 아닌가.

이제와서 5년 단임제의 폐단을 논하는 것은 한가로운 소리일 수 있다.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의 장기집권과 `체육관 선거'에 시달려온 국민들이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자'는 일념으로 직선제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기형적 `5년 단임제'의 폐단*

그동안 기형적인 `5년 단임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얘기들이 간간히 나왔지만,`개헌=정권연장 음모'로 각인된 부정적 인식 때문에 누구도 무게있게 거론하거나 추진할 수 없었다.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통령중심제의 표본인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이 가능해지려면, 유력한 대통령 후보들이 특별히 불리하다고 느끼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차기는 말고 차차기 권력구조를 미리 정하는 수 밖에는 없다.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지만, 다음 대통령 선거 때 여야 후보들이 극적 타협을 통해 공동으로 임기중 개헌 약속을 하거나, 아예 국민투표를 통해 차차기 권력구조를 미리 확정하는 절차를 밟는 길 뿐이다. 어렵지만, 나라의 앞날을 위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일이다.

예상보다 빨리온 김대중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을 5년 단임제 탓으로 돌릴 뜻은 전혀 없다. 김 대통령이 정치를 잘 했으면, 측근들을 철저히 단속해 끼리끼리 해먹는다는 원성을 사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까지 몰리지는 않았을 터이다. 비록 소수정권으로 탄생했지만,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여세를 몰아 `개혁다운 개혁'을 추진하고 민주주의를 확실하게 진척시킬 수 있었다. 남북 정상회담 성사에 노벨 평화상 수상이란 호재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상황은 결국 김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몫이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퇴임해야*

레임덕 현상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으로 레임덕을 담담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김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는 역대 대통령이 레임덕을 늦추려고 안간힘을 쓰다 일을 더욱 그르친 사례를 교훈삼아 국정에 전념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민주당과 일정한 거리를 둠으로써 야당의 집요한 공격대상에서 벗어나 상처도 덜 받고, 협조도 얻어 `성공한 대통령'으로 퇴임하겠다는 소망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퇴임하는 것은 그의 소망일 뿐 아니라 온 국민이 바라는 바이다. 나라의 운명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초당적 위치에서 경제문제 남북문제 등에 전념한다면 새로운 희망이 생긴다. 총재직을 조기 사퇴한 결단이 퇴색되지 않도록 면모를 일신한 중립적 내각을 구성해 모든 정파의 협조를 얻을 필요가 있다.

여당은 물론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특히 한석 모자라는 의석 과반수를 차지한 한나라당이 빈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협조해야 한다. 그래야 공무원들도 움직이며 나라의 앞날에도 희망이 보인다.

`새옹지마' 고사에서 행운이 불행이 되고 불행이 또 행운이 되듯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총재직을 사퇴한 김 대통령의 결단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원섭/ 논설실장w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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