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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맞는 `10.26' 단상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0년대 초 시위참가 학생들을 강제징집해 특별정훈교육과 프락치 공작활동을 강요했던 이른바 `녹화사업'은 당시 공안기관들이 총동원된 합작품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는 징집된 학생 수가 무려 1100명에 이르렀다고 밝힌다. 그 가운데는 의문을 죽음을 당한 사람도 있다. 군부는 가혹행위를 감추기 위해 관련 기록을 은폐하거나 조작하기도 했다. 월북을 기도했다든지 하는 게 그것이다. 얼마나 억울하고 통탄스런 죽음인가.

징집된 학생들은 군대에서의 `순화교육'과 회유공작을 버티느라 인간성이 황폐화하는 등 후유증이 컸다. 군대라는 폐쇄된 조직과 주위의 냉대, 상의하거나 호소할 데도 없이 황량한 벌판 한 가운데 홀로 내동댕이쳐진 느낌. 이런 시련을 겪으며 어쩔 수 없이 순응하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껴 남몰래 번민한 사람들이 많다.

군사독재정권이 반정부세력의 핵심인 대학생들을 강제입영시킨 것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였다. 녹화사업의 원조는 1971년 10월15일 위수령 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선개헌으로 간신히 당선된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선포를 위한 전초작업으로 대학 내 저항세력을 뿌리뽑으려 했다. 위수령을 발동해 전국 각 대학에 휴업령을 내리고 지도부 200명을 일시에 학사제적해 군에 강제 입대시킨 것이다. 신성한 국방의무가 정권유지 수단으로 악용됐다. 박정희가 `만들어준' 단체인 `71동지회'는 참담했던 그날을 기억하며 며칠전 30주년 기념식을 갖고 민주화 노력을 계속하기로 다짐했다.

`녹화사업' 원조 71년 위수령

개인 경험을 덧붙이자면, 당시 최전방 말단 소총소대에 배치돼 `3번 소총수'로 박박기던 기억이 새롭다. 대학생이라곤 찾기보기 힘든 전방에서 수시로 보안사에 불려가고, 누군가의 감시 대상이 된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군대라는 거대한 조직에 맞설 수도, 그렇다고 탈영할 수도 없는 숨통이 콱콱 막히던 생활, 부대 상사들의 곱지 않은 눈길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듯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던 박정희 대통령은 그뒤 유신체제로 종신집권을 꿈꾸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고, 역사는 바뀌었다. 바로 22년전 오늘 일이다.

절대권력의 물리적 폭력과 인권유린 행태가 사라진 것은 불과 얼마전이다. 이 정도의 민주화나마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희생됐는지 모른다. 과거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 중에는, 그것이 `훈장'이 되어서 현재 잘 나가거나 주위의 부러움을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극소수에 불과하다. 정치권에 몸담고 있었거나 그뒤 정치권에 들어간 몇몇이 각광을 받았을 뿐이지, `원칙'을 지키려 한 대다수는 지금도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더욱 가슴아픈 것은, 민주화의 과실을 독점한 정치권 인사들이 그나마 제대로 처신하지 못해 민주화운동 세력을 도맷금으로 욕먹게 하고 위상을 실추시킨 일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 그리고 측근 실세들이 뼈아프게 반성하고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오죽하면 극복대상이던 `박정희 신드롬'까지 나오게 됐겠는가.

민주화 보상법 통과돼야

민주화운동을 하다 몸을 다치거나 직장에서 쫓겨나는 등 피해를 본 사람들을 대상으로 김대중 정부 들어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법이 만들어졌으나 실질적 보상은 미흡했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해 보상의 대상과 범위를 구체화한 새 보상 법안이 여야 각 당에 제출돼 있는 상태지만, 여소야대 국회에서 통과될 지 불투명하다.

일부에서는 왜 국민의 세금으로 보상해야 하느냐는 불만을 갖는 것같다. 그러나 과거에 불의를 저지른 사람들이 여전히 떵떵거리고 부끄러운 과거가 경륜으로 미화되는 거꾸로된 세상을 바로잡으려면 인식을 바꿔야 한다. 혹시라도 `당한 사람만 억울한 법이니 모른척 눈감는 것이 상책'이라는 잘못된 가치관이 번질까 두렵다. 사회가 그렇게 돌아간다면, 과연 누가 공동체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려 하겠는가.

이원섭 칼럼 /논설실장w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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