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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2.06.13(목)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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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감격, 그 후 2년/ 정연주


살아가면서 가슴 터질 것 같은 벅찬 감격을 느끼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특히 사회 전체가 한덩어리가 되어 감격에 전율하는 순간은 흔치 않다. 일제 식민지배에서 풀려난 8·15 해방, 전두환 군부독재의 무릎을 꿇게 한 6월 항쟁, 분단 반세기 만에 처음 있었던 남북 정상의 포옹과 공동선언, 그리고 온나라를 들끓게 한 월드컵 축구경기의 첫 승리 등이 벅찬 감격을 누리게 한 사건들로 꼽힐 법하다.

이 가운데 감동의 동시성과 폭발성에서 월드컵 첫 승리를 따라갈 만한 사건은 없었을 듯싶다. 거의 모든 국민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골이 터질 때마다 온몸으로 환호했던 그 감격은 가히 핵폭발과 같은 빅뱅이었다.그 감격은 지극히 순수했고, 단순했으며, 동시 폭발적인 것이었다.

그 엄청난 월드컵 열기에다, 온갖 비리로 인한 정치 혐오증에 묻혀,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감격의 빛도 크게 바래진 탓까지 있어, 2년 전 남북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의 감동과 의미가 상당부분 퇴색한 느낌마저 든다.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지닌 역사성까지 폄하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반세기 분단과 증오의 세월 끝에 남북 정상이 처음 만나 포옹한 사건은 두고두고 우리 겨레의 역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 두 돌에 즈음하여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우선은 우리 사회의 수구 기득권 세력이 아직도 사회 곳곳에, 특히 언론분야에 뿌리깊게 박혀 있으며,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냉전대결의 무서운 발톱을 드러내 사정없이 할퀴려 든다는 것이다. 수구 냉전언론이 얼마나 사나운 공격본능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지는 지난 2년 동안의 행태가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태 전 냉전·수구 언론은 정상회담과 남북 공동선언을 이렇게 평가했다. ‘한반도 새 역사 함께 만들자’(<조선일보> 2000년 6월14일치 1면) “남북정상이 합의한 5개항의 기본 뼈대는 남북한 주장의 ‘주고받는’ 절충 내지 병행에 있는 것 같다. … 호혜정신에 따라 남쪽의 ‘국가연합’과 북쪽의 ‘연방제’ 사이의 공통분모를 찾아내자는 합의문에 그러한 정신이 드러나 있다.”(〃같은 해 6월16일치 사설) “북한 지도층의 대남인식이나 상황 대처가 과연 변화하고 있느냐에 대해 우리는 일단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같은 해 6월16일치 사설)

그렇게 남북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의 정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조선일보 등이 그 뒤 얼마나 맹렬하게 햇볕정책과 공동선언문을 할퀴고 생채기를 냈는지는 역사의 기록으로 모두 남아 있다. 최근 일어난 금강산댐 소동과 남북 공동선언 제2항을 둘러싼 논쟁도 사나운 공격본능이라는 수구언론의 냉전적 속성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그러나 수구 기득권 세력의 사나운 공격에도 불구하고 남북 공동선언 이후 한반도 정세는 대결과 긴장보다는 화해와 협력, 평화 쪽으로 성큼 옮아갔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등장 이후, 특히 9·11 동시테러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와 남북 사이에는 ‘악의 축’ 발언에 견줄 만한 긴장과 대결, 위기 분위기는 없었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는 점, 이를 통해 남북 사이에 트인 공식·비공식적인 채널 등이 위기관리 측면에서 크게 효력을 보아온 게 사실이다. 대북 ‘퍼주기’가 아니라 평화를 담보하는 여러가지 장치들을 ‘퍼온’ 게 분명하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기가 아닌 평화를 담보하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무엇일까.

남북 공동선언 뒤 2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평화를 심기 위해 남과 북이 서로 다가서는 길을 찾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차이점, 대결의 요인을 찾기보다 공통점, 화해·협력의 요인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 남북 공동선언 2항에서 남쪽의 연합제 안과 북쪽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자는 점을 강조한 것도 차이점, 대결의 요인보다 공통점, 화해·협력의 요인을 찾자는, 공존과 평화의 접근논리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정신이 확산될 때 한반도에는 평화의 뿌리가 굳건히 내리게 된다.

정연주/ 논설주간jung4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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