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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차이/ 정연주


현대 언어학의 창시자이자 미국의 대외정책을 통렬하게 비판해온 노엄 촘스키 교수를 1995년에 회견한 적이 있다. 94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미국 공화당이 대승을 거둔 뒤였기에 자연히 미국 정치얘기도 화제로 떠올랐다. 촘스키 교수에게 민주당과 공화당은 두루 민중의 삶은 아랑곳않고, 그저 거대 기업자본을 위해 봉사하는 정치집단에 지나지 않는 터여서, 누가 선거에서 이기든 근본적으로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었다. 특히 한반도처럼 미국 영향을 압도적으로 받는 나라의 경우 민주당과 공화당의 ‘조그만 차이’조차도 엄청나게 다른 크기의 파장으로 와닿기 때문이다. 전두환 군부독재를 적극 지지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박정희 군부독재를 비판했던 지미 카터 대통령의 차이가 한국의 운명과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크게 다른 영향을 끼쳤다고 촘스키 교수에게 얘기했다. 원칙과 근본에 엄격한 촘스키 교수는 어떤 시각에서 문제를 보는가의 차이일 거라며, 자신은 여전히 근본적인 차이를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클린턴 행정부 끝 무렵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하는 등 북한과 미국은 적극적으로 협상을 벌여 북한 미사일 문제를 매듭짓는 마지막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장거리 탄도미사일은 북한이 전면 개발을 중지하기로 하고, 대신 우주공간의 평화적 사용을 위해 미국이 북한 인공위성을 발사해주기로 했다. 노동 1, 2호인 중거리 미사일은 북한이 개발을 전면 금지할 뿐 아니라 이미 배치된 것도 폐기하기로 했다. 단거리 미사일은 사거리 500㎞까지 개발을 허용하되, 수출은 금지하도록 했다.

미국이 원하는 내용이 거의 들어 있었다. 남아 있는 문제는 미사일 폐기를 ‘검증’하는 문제와 미사일 포기에 대한 보상방법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도 클린턴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북-미 정상회담을 열면 쉽게 풀릴 것이었다. 보상문제만 하더라도 북한은 그동안 줄곧 주장해온 현금방식(1년에 10억달러씩 3년 동안 보상)을 철회하고 식량, 석탄, 생활필수품 등을 지원해 달라고 한 터였다.

이 역사적인 협상은 미국 대선 결과가 법정시비로 번지고, 클린턴이 중동 평화협상에 매달리느라 방북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매듭을 짓지 못했다. 앨 고어가 승리했더라면, 클린턴의 방북이 이뤄지고, 미사일 협상 타결과 함께 양국의 관계 정상화도 이뤄졌을 터였다. 그러나 조지 부시와 그를 에워싼 강경매파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북-미 관계는 곤두박질쳤다. 특히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을 위해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부시와 그 주변의 강경매파들은 북한과의 협상이 되레 짐이 되었다.

다음달 중 잭 프리처드 미국 특사가 평양을 방문하여 부시 행정부 출범 뒤 첫 북-미 회담을 열게 된다. 부시 행정부가 과연 북-미 협상에 얼마나 성실하고 진실하게 임할 것인지는 클린턴 정부 끝무렵에 이뤄진 미사일 협상을 받아들여 이어나갈 것인지, 그리고 핵 문제 따로, 미사일 문제 따로, 재래식 병력 문제 따로가 아니라, 이들을 한데 묶어서 정치·군사·경제 등 포괄적으로 접근할 것인지, 즉 페리 프로세스로 돌아갈 것인지에 달려 있다.

그러나 딕 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부시 주변 강경매파들의 딴죽걸기가 북-미 협상의 전망을 매우 어둡게 만든다. 이들은 북-미 회담이 열리기 전부터 재뿌리는 데 열을 올렸다. 말로는 ‘북한 미사일위협 제거’를 얘기하면서도 속내는 미사일방어체제와 국방비 증액을 위해 ‘북한 위협’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반도에 긴장과 대결의 냉전구도가 계속되기를 원하는 무리는 이들뿐만 아니다. 국내에도 긴장과 대결을 원하면서 미국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수구언론과 정치인들이 득시글거린다. 이들의 사고를 들여다보면 미국인보다 더 ‘미국적’이다. 이 치욕적인 사대주의 근성을 극복하지 않고는 한반도에 참된 평화가 오기 쉽지 않다.

정연주 논설주간jung4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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