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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자식, 친일의 후예/ 정연주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악명높은 이름 때문에 평생 아버지가 저지른 범죄의 그림자에 갇혀 있는 나치의 자식들”-독일의 저명한 언론인인 레버르트 부자에 의해 쓰여진 <나치의 자식들>(도서출판 사람과 사람)에 나오는 한 귀절이다. 아버지 로베르트와 아들 슈테판 레버르트는 40년 간격을 두고 나치 자녀들을 인터뷰하여 그들 삶의 궤적을 추적했다. 이 책이 보여주는 나치 자식들 삶은 매우 다양하다.

다양한 `나치 자식들'의 삶

“단 한번도 아버지 이름을 저주로 느낀 적이 없다”며 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당당했던, 나치 전범 2호 루돌프 헤스의 아들은 그의 아버지를 전범으로 재판했던 판사들을 위해 봉사할 수 없다며 군복무마져 거부했다. “나치의 삶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는 최후진술을 한 아버지처럼 그의 아들도 확신범이었다.

“유태인 학살은 우리 역사의 명예로운 시간”이라고 외친 나치 SS 친위대 총대장 하인리히 힘믈러의 외동딸은 분노 속에 일생을 살았다. 힘믈러라는 이름이 주는 혐오와 저주에도 불구하고 그의 외동딸은 아버지 이름을 버리지 않았다. 그로 인해 수많은 불이익을 당했음에도. 그 역시 확신범이었다.

“나의 총통이여, 나는 오늘 또 15만 명의 폴란드 유태인을 학살했음을 보고드립니다”라고 히틀러에게 보고한 폴란드 총통 한스 프랑크의 두 아들은 아버지가 너무 권력을 탐닉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둘째 아들인, <슈테른>지의 기자 니콜라스 프랑크는 <나의 아버지, 나치의 살인마>라는 저서를 통해 아버지를 철저히 비판하고 극복하려 했다. 그는 아버지를 “비겁하고 부패했으며, 권력에 눈이 먼, 잔혹한 기회주의자”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마틴 보르만은 히틀러의 총애와 신임을 얻어 총통비서가 된, 나치 제국의 2인자였다. 1945년 베를린을 탈출하다 사망했으며,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는 궐석재판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큰 아들 마틴 보르만 주니어는 가톨릭 신부가 되어 아버지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그는 아버지라는 존재와 아버지의 범죄를 구분했다. 그에게 아버지 보르만은 분명한 핏줄이었다. 그러면서도 `악의 화신'으로 알려진 아버지의 죄악을 지우려고 하거나 외면하려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는 `유태인 대학살 생존자 자녀와 나치 전범자 자녀의 모임'에도 나갈 수 있었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의원모임'이 친일 반민족 행위자 708명의 이름을 공개하자 방응모 김성수 등 자기 신문의 창업주 이름이 낀 조선·동아일보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 신문은 윤경빈 광복회장의 말을 왜곡하면서까지 명단선정 과정을 문제 삼았다. 그런 과정에서 방응모 김성수의 친일행각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증발해버렸다.

방응모는 친일잡지 <조광> 1940년 3월 권두언에서 “일본 제국과 천황에게 성은 속의 만복적 희열을 느끼며”라고 했고, `지나사변 3주년' 때에는 “우으로(위로) 성명하옵신 천황폐하를 모시옵고...이 성전의 성과가 완수되기까지 은인자중, 멸사봉공의 희생적 정신으로 나아가야 할 것”(40년 7월)이라고 했다. 김성수는 <매일신보> 43년 8월5일자 기고문에서 “아등은(우리는) 황국신민이다. 충성으로 보국하자”고 했으며, 같은 해 11월 6일에는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대의에 죽을 때 황민됨의 책무는 크다”고 강조했다. 이틀 뒤에 다시 “반도청년에게 순국의 길이 열렸는데도 불구하고 왜 학도 전원이 용감하게 지원하지 않는가”고 오히려 학도군 지원을 하지 않은 애국청년들을 질책했다. 이밖에도 방응모 김성수의 친일행각을 보여주는 글들은 많이 있다. 역사적 기록들이다.

역사까지 왜곡하는 무리들

그러나 방응모 김성수의 이런 친일행각들은 조선·동아일보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누가 친일파인가'고 오히려 되묻기까지 했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까지도 왜곡한다. 이러고도 일본 교과서 왜곡을 비판할 수 있을까. 보르만 주니어 신부처럼 아버지의 존재와 아버지의 범죄를 구분할 때, 그래서 역사적 잘못을 인정하고 참회할 때 진정한 용서, 화해, 극복이 가능하다.

정연주/ 논설주간jung4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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