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정연주 칼럼 등록 2002.01.24(목) 21:08

엔론파산의 교훈/ 정연주

미국서 일곱번째로 큰 회사였던 엔론이 지난해 말 파산했다. 전성기 때 연 판매고가 1천억 달러(130조 원. 2000년 한국 국내총생산 540조원의 4분의 1)에 이르렀고, 미국의 경제잡지 <포춘>이 6년동안 잇따라 `미국서 가장 혁신적인 회사'로 꼽은 이 회사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부정직한 회계처리, 제어장치없이 무한확장으로 치달은 탐욕스런 기업경영, 이를 가능케 한 탈규제 조처들, 정치권과의 검은 유착 등 `시스템의 총체적 실패'라는게 미국 언론의 뒤늦은 진단이자 반성이다.

시스템의 총체적 실패

엔론은 1980년대 미국을 휩쓴 기업합병의 산물로 태어났다. 해군장교 출신인 케네스 레이 휴스턴 천연개스 사장은 당시 적대적인 기업합병의 광풍을 피해 살아남았다. 이 때 그가 몸으로 배운 것은, 기업의 덩치를 키워놓으면 함부로 삼키지 못한다는 `대마 불사'였다. 네브라스카 주에 있는 인터노스와 합병하고, 이름을 `엔터론'이라고 지었다. 그러나 그 단어가 의학용어로 `창자'라는 것을 알고 `터'자를 털고 `엔론'으로 만들었다.

엔론 경영을 맡은 케네스 레이는 공격적인 경영을 시작했다. 천연개스 공급에서 벗어나 이윤의 폭이 큰 전력 등 에너지 판매에 뛰어 들었다. 사업은 날로 번창했으며, 사업영역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자회사가자그만치 1천개나 됐다. 이 폭발적인 성장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엔론은 엄청난 규모의 바깥 돈을 가져다 쓰면서 이를 장부외 거래로 처리했고, 그래서 큰 이익이 발생한 것처럼 분식회계처리했다. 1년에 5200만 달러(650억원)나 되는 거액의 회계업무비를 받았던, 미국 5대 회계사법인인 아서 앤더슨은 그 엄청난 돈을 받은 대가 때문인지 꼼꼼히 따져야 할 회계업무를 제대로 따지지 않았다. 되레 문제의 소지가 있는 주요문서들을 파기처분해버렸다.

정부 규제가 제대로만 작동했던들 이 모든 것은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엔론은 막강한 로비력을 동원하여 무한확장에 방해물이 된 규제들을 철폐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93년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 결정이다. 엔론은 전력판매의 경우 재무보고서 제출의무를 없애줄 것을 요청했다. 규제와 감시의 대상이 되기 싫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에너지규제위가 이를 받아 들였다. 그때 이 규제위 위원장은 공화당 강경보수파인 필 그램 상원의원의 아내이자 한국인 3세인 웬디 그램이었다. 웬디 그램은 이 결정을 내린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규제위를 그만 두고 고액 연봉자리인 엔론의 이사로 옮겼다.

엔론의 이러한 막강한 로비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정치권과의 유착이다. 89년 이후 엔론은 공화 민주 양당에 모두 595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줬다. 이 가운데 74%가 공화당으로 갔다. 특히 조지 부시 대통령 부자와 인연이 깊다. 92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나섰을 때 엔론의 케네스 레이 사장은 공화당 전당대회장을 맡았다. 아들 부시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자 레이 사장은 55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부시 진영에 줬다. 지난해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가자 엔론 간부들은 딕 체니 부통령을 비롯해 재무장관, 상무부 장관 등 부시 행정부 고위관리들을 여섯번이나 만났다.

권력 감시체제의 중요성

엔론이 파산하기 전 레이 사장은 모두 3700만 달러 어치의 보유증권을 처분했다. 그렇게 자기 주식은 처분하면서도 퇴직연금을 거의 몽땅 엔론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던 종업원들에게는 주식 처분을 하지 못하게 했다. 한때 90달라를 홋가했던 엔론 주가는 지금 25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종업원들은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부패와 부정직, 시스템의 붕괴- 엔론 파산이 주는 교훈은 엄청나다. 그런데 그게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사회를 지금 뒤덮고 있는 온갖 게이트의 뿌리도 바로 그것이 아닌가. 부패와 부정직, 검찰 등 시스템의 붕괴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권과 권력기관에 대한 견제·감시체제가 마련돼야 한다. 인사청문회, 검찰 독립과 특별검사제 도입 등은 대통령 레임덕 현상이 심하고, 차기 권력이 정해지지 않은, 그래서 권력이 진공상태처럼 된 지금이 역설적으로 최적기일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결단, 개혁적 의원들의 응집이 절실히 필요하다.

정연주/ 논설주간jung46@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01021000/2002/01/001021000200201242108002.html



The Internet Hankyoreh copyright(c) webmaster@new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