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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정치'의 큰 흐름


200년이 넘는 미국 역사에서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는 방식은 온갖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지금의 예비선거제로 정착됐다. 초기의 대선 후보는 `킹 코커스'라 불린 의회내 중진의원들 밀실모임에서 결정됐다. 킹 코커스는 1831년부터 사라지고, 각 주의 대의원들이 참여하는 전당대회에서 후보를 선출하는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대의원 선출과정에 당 보스들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그래서 전당대회는 이들 보스들의 세상이었다. 이에 반대한 개혁파가 일반 당원과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정치개혁을 원했으며, 그 결과 예비선거제도가 도입됐다. 20세기 초의 일이다. 1916년에 이르러 예비선거를 실시한 주는 전체의 과반수를 넘었다.

미국 기득권 세력도 예비선거제 반대

그러나 이런 개혁 움직임은 그때나 지금이나 늘 그렇듯 당내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부딪쳤다. 기득권 세력은 예비선거가 돈이 너무 많이 들고, 당의 내분을 불러 일으킨다며 반대했다. 그게 먹혀 들어 1936년에 이르러 예비선거를 실시하는 주가 12개로 줄어 들었다.

2차 대전이 끝난뒤 개혁움직임이 다시 일어났다. 특히 텔레비전의 출현으로 일반국민들이 후보들을 직접 볼 수 있게 되면서 예비선거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때의 예비선거는 다분히 `미인대회'와 같은 것이었다. 후보들은 일반 당원과 국민들이 참여하는 예비선거를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기는 했지만, 그것이 후보선정을 결정짓지는 못했다. 후보선정은 여전히 당의 보스들 손아귀에 있었으며, 그래서 후보들은 이들 눈에 `이쁘게' 보이려했다. 가령 1960년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존 F 케네디도 단지 세 군데의 예비선거에 참여하여 큰 승리를 거둠으로써 당 보스들 눈에 들게 되었으며, 결국 후보를 따냈다.

이런 비민주적 방식에 일대 변혁을 가져오게 하는 사건이 마침내 터졌다. 1968년 민주당의 시카고 전당대회 때 그 유명한 반란이 일어났다. 베트남 반전시위가 절정에 이르렀던 당시, 미국내 진보세력은 뉴 햄프셔 예비선거에서 42%라는 엄청난 표를 얻은 `반전 평화후보' 유진 매카시 상원의원을 지지했다. 그러나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은 예비선거에 참여한 적도 없는 당 기득권세력인 휴버트 험프리 부통령을 대선 후보로 뽑았던 것이다. 결국 이에 항의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져 대규모 유혈사태로 번졌다. 그게 기폭제가 되어 예비선거 개혁안이 마련됐으며, 70년대 초부터 오늘날과 같은 예비선거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대선 후보가 당의 실세, 당의 보스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당원, 일반 국민의 손에 의해 결정되는 정치개혁을 이뤄냈던 것이다.

미국 대선후보 선출역사를 압축해보았다. 한마디로 모으면 그것은 당 우두머리들의 폐쇄적인 독점체제에서 벗어나, 일반 당원과 국민의 참여폭이 활짝 열린 개방체제로 옮아간 것이었다. 그런 개방체제 속에서 지미 카터, 빌 클린턴과 같은 새 인물들이 등장할 수 있었다. 미국의 이러한 정치개혁은 거의 민주당에 의해 주도되었다. 선거제도를 바꾸는 주 의회를 민주당이 거의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점체제에서 개방체제로

한국의 민주당에서도 미국의 예비선거제와 비슷한 정치실험을 시작했다. 한국의 정치문화와 구조를 생각하면 가히 혁명적인 것이다. 그 파장과 영향이 한 정당에만 국한될 수도 없을 터다. 정치지형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그러나 70여년전 미국에서 기득권 세력이 돈이 많이 든다느니, 당이 분열한다느니 하며 예비선거제에 저항했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개방체제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을 터다. 게다가 냄비처럼 바글바글 끓는 한국 언론이 `파탄'과 `심각한 부작용'을 조급하게 외칠지도 모른다. 이미 그런 조짐은 보인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극복하고, `열린 정치'의 성공을 위해 부작용을 극소화하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군부정권과 `세김씨 정치'가 압도한 40여년의 한 시대를 접고, 그 다음의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위해 개방체제의 정치개혁은 거역할 수 없는 대세다. 그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정치실험의 막이 오르고 있다.

졍연주/ 논설주간jung4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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