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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상훈과 개털들


1978년생. 24살. 한국 경제가 부도나기 직전까지 갔던 경제위기의 격랑이 일렁일 때 대학에 입학하여, 테러에다 세계공황 얘기까지 나오는 힘든 상황이 이어질 내년 봄에 대학을 졸업하게 된다. 취업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렵다. 살아가는 길에 이처럼 불가항력적인 조건이 던져진다. 특히 가진 것이 없는 이들에게 이런 조건은 매우 혹독하다. 그러나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는 불가항력처럼 보이는 외부조건조차도 때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 덕분에 쉽게 풀린다. 방상훈 조선일보사 사장 등 언론권력자들이 풀려난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은 더욱 굳어진다.

내년 봄 졸업하는 대학생들이 많이 태어난 해인 78년, 그해 11월에 나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 수감됐다. 75년 3월 자유언론을 외치다 동아일보에서 강제 해직당한 동아투위 선배 9명과 함께. 우리는 당시 제도언론이 일체 보도하지 않던, 학생시위 등 민주화 운동을 일지형식으로 유인물에 담았는데, 그게 긴급조치 9호 위반이었다. 참담한 시대였다. 그때 군부독재 권력에 굴종·야합했던 무리들이 요즘 들어 부쩍 언론자유 투쟁이니, 뭐니 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의 사람들이다.

23년전 지금쯤...

서대문 구치소에 들어가 보니 긴급조치, 반공법 위반 등 정치범들이 우글거렸다. 그 혹독한 유신독재 시절, 역사의 아픔에 동참하는 이들이 갈 곳이 어디겠는가. 내가 있던 사동에는 리영희 선생이 이미 들어와 있었고, 얼마 뒤에는 <민족경제론>을 쓴 박현채 선생도 들어와 앞 사동에 터를 잡았다. 그 윗층에는 김지하 시인이 오래 전부터 한 사동의 반을 혼자 쓰는 완전격리 상태로 갇혀 있었다. 이밖에도 수많은 대학생, 지식인들이 노란딱지, 빨간딱지를 가슴에 붙힌 채 거기 있었다.

그러나 정치범들의 감옥살이 형편은 한결 나은 편이었다. 영치금도 들어오고, 때 국물이 질질 흐르는 푸른 관복이 아닌 솜이 툭툭한 한복도 입을 수 있었다. 그해 겨울은 몹씨도 추웠다. 방안에 둔 버킷 물이 아침에 일어나보면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추위를 남달리 심하게 타던 나는 두꺼운 내복에, 털 스웨터와 솜이 두툼한 한복까지 겹쳐 입고, 거기에다 밖에서 넣어준 두꺼운 담요까지 뒤집어 쓰고도 추워서 달달 떨며 밤잠을 설치곤 했다.

이런 나의 모습은 거기 있는 수많은 '개털들' 처지에 비하면 사치스럽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면회 한번 오지 않는, 그래서 영치금도 한푼 없는, 그리고 그 혹독한 겨울을 짧은 팔 런닝셔츠에 때 국물 질질 흐르는 푸른 관복만 입고 지내는, 일반수 '개털들'이 주변에 수없이 많았다. 형이 확정되어 본격적인 옥살이를 하러 떠나는 이들에게 가장 큰 선물은 내복 한벌을 주는 것이었다. 많은 경우 번듯한 변호사만 샀더라도 최소한 집행유예로 풀려났을 그런 죄목의 개털들이었다. 교도소 감방 곳곳에 박혀있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글귀는 이들 개털들의 피눈물나는 항변이었다.

법이 공정하지 못하면...

방상훈 조선일보사 사장 등 언론권력자들이 풀려난 것을 보면 이 땅의 법은 결코 공정하지가 않다. 만약 그들이 언론권력자가 아닌, 일반 개털들이었다면 이리도 쉽게 풀려날 수 있었을까.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는 이들이 어디 그들뿐인가.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는가.

'최종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는 무죄'라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인신구속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원칙은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 지금까지 이 원칙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고, 그래서 인권의 침해와 남용이 심했다. 그리고 이 원칙은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돼야 한다. 그것이 힘과 돈을 가진 자들에게만 선별적으로 적용되고, 개털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경우 정의와 평등은 껍떼기만 남게 된다. 방상훈 사장 등의 석방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는 모든 개털들도 풀려나야 한다.

정연주/ 논설주간jung4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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