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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1.21(일) 20:56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는데


“저거 우리한테 맡기면 더 잘 운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며칠 전 만난 대학생에게서 들은 말이다. 그는 자신을 컴퓨터 동아리 회원이라고 소개하며, 정보화 시범마을의 서버(컴퓨터)와 홈페이지 운영을 가까이 있는 대학의 컴퓨터 동아리에 맡겨주기를 바랐다. 그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홈페이지 디자인이나 서버 운영 능력을 키우는 데는 정보화 시범마을이 딱”이라며 “주민들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치고, 주민들에게 보급된 컴퓨터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 이후, 주요 대학의 전자공학 관련 학과에는 어디나 ‘스터디그룹’이라는 게 있었다. 친구나 선후배끼리 모임을 만들어 그동안 배운 지식을 활용해 회로나 칩을 직접 설계해보며 지식과 경험을 넓혔다. 80년대 들어서는 동아리 형태로도 많이 생겼다.

예컨대 요즘은 네온사인 간판을 쉽게 만든다. 하지만 당시에는 글자를 전광판에 표시하는 것도 대학 전자공학도들의 주요 도전 과제였다. 스터디그룹이나 동아리에 가입하면 선배들이 주는 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전광판에 모임 이름을 표현해보라는 것이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졸업 뒤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했다. 서울의 경우 영등포나 구로 등의 허름한 사무실을 빌려, 회로나 칩 설계와 제품화에 매달렸다. 스터디그룹이나 동아리를 매개로 한 산·학 협력 사례도 많았다. 이들은 이후 하이닉스반도체(당시는 현대반도체)와 삼성전자(삼성반도체) 등의 등장에 주춧돌 구실을 했다. 영등포와 구로에 창고 같은 사무실을 쓰던 벤처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이들 업체에 창립멤버로 영입됐고, 이후 같은 스터디그룹이나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후배들도 선배들의 권유로 이들 업체에 취직했다.

스터디그룹이나 동아리 바람은 80년대 후반에도 불었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이 칩이나 회로였다면, 80년대 후반에는 개인용 컴퓨터 사용을 돕는 프로그램이 많았다. 90년대 초반 컴퓨터 통신망 천리안이나 하이텔 게시판에는 “제가 개발했어요. 써 보시고 미흡한 부분 지적해주세요”라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개씩 올랐다.

세계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에 대항해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래아한글’과 안철수연구소의 ‘브이3’, 컴퓨터 통신 시절 거의 모든 피시에 깔렸던 ‘이야기’ 등도 당시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정보통신 산업은 새로운 정보기술 흐름에 대한 대학생들의 활발한 도전이 있은 뒤에 도약하는 과정을 밟아 성장했다. 90년대 후반의 벤처기업 붐도 마찬가지다. 정보통신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 흐름을 잘 살려야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학생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바로 돈을 겨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경험할 기회를 준다면 지하창고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상황도 감수한다. 게다가 봉사활동 기회까지 주어진다면 더더욱 바랄 게 없다.

바로 그 대학생들이 정보화 시범마을의 홈페이지 운영을 맡겨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는 191개 정보화 시범마을이 조성돼 있다. 대형 시스템통합 업체가 몽땅 맡아 운영하다 보니 차별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학의 컴퓨터 관련 동아리들의 신청을 받아 1~2개씩 운영을 맡기면, 초고속 인터넷 콘텐츠나 전자상거래와 관련된 경험을 쌓고 아이디어를 얻는 기회로도 활용될 수 있다. 덩달아 각 마을의 홈페이지를 차별화하고 공개 소프트웨어를 활성화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정부가 공개 소프트웨어 활성화를 아무리 외쳐봤자, 대학생들의 도전이 없으면 또다시 외산 제품 좋은 일만 시킬 수 있다.

정보화 시범마을 홈페이지를 대학 컴퓨터 동아리에 맡겨보자. 그리고 해마다 대통령상을 걸고 전국 정보화 시범마을 홈페이지 경연대회를 열자. 동아리 새내기들이 홈페이지를 전국 최고로 만들기 위해 밤샘까지도 마다지 않는 모습으로 미래 성장동력을 찾자.

김재섭 정보통신전문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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