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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0.24(일) 21:05

한국문학 번역학교를 세우자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면 큰 소동이 벌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아직 국제 저작권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던 그 무렵, 출판사들은 앞다투어 수상작을 ‘뚝딱’ 번역해 내곤 했다. 중복 출판에 부실 번역으로 수상작은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였다. 그렇게 훼손된 작품인데도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노벨문학상 특수라 할 법한 상황이었다.

이즈음 그런 특수나 소동은 많이 가라앉은 느낌이다. 저작권 협약의 규제를 받게 되었기 때문만은 아닐 터이다. 노벨문학상을 대하는 시선이 한결 성숙해졌달까. 노벨상이라면 일단 ‘끔벅 죽는’ 맹목에서 벗어나, 제 아무리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도 냉정하게 따져 보는 객관화 능력이 얻어진 결과라 보고 싶다.

올해 수상자인 오스트리아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경우에도 기왕에 그의 대표작 격인 〈피아노 치는 여자〉와 희곡이 국내에 번역돼 있긴 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이 추가 번역 출간바람으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실험적인데다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그의 작품들이 그다지 ‘상품성’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급진 페미니스트로서 기성의 관습과 제도를 상대로 날카롭게 각을 세워 온 여성 작가의 수상은 그 자체로 평가할 만해 보인다. 그러나 그가 이른바 주류 언어의 하나인 독일어로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라는 사실은 아쉽게 느껴진다. 노벨문학상의 유럽어 중심주의를 다시금 확인한 것 같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면 으레 뒤따르는 ‘우리는 언제나 …’ 하는 푸념도 이제는 식상한 느낌이다. 번역이 문제라느니, 궁극적으로는 경제력을 포함하는 국력이 말해 줄 거라느니 하는 진단과 처방도 익숙한 가락이긴 마찬가지다. 노벨문학상의 유럽어 중심주의에 짜증이 나면서도 동시에 그 상에 한국문학의 자존심이 걸려 있기라도 하다는 듯 초조해하는 국내의 반응 역시 개운하지는 않다.

노벨문학상이란 세계 곳곳에서 주어지는 여러 문학상의 하나일 뿐이라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굳이 노벨문학상에 목매달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몇 해 전에 방한한 나이지리아 출신 노벨상 수상 작가 월 소잉카도 노벨문학상을 타기 위한 인위적인 노력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충고를 남긴 바 있다. 평상심을 지니고 작품을 쓰다 보면 언젠가는 한국에도 노벨문학상 차지가 올 거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문학의 번역과 소개를 등한히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굳이 노벨상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 영화와 텔레비전을 위시한 한류 열풍, 각종 스포츠 종목에서 거두고 있는 세계 수준의 성과를 감안하면 문학의 ‘부진’은 한결 안쓰럽고 답답해 보이기조차 한다.

그러나 당위와 구호만으로는 뜻한바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법.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방도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연세대출판부가 펴낸 〈한국문학의 외국어 번역〉이라는 책에서 나온 제안에 귀기울여 볼 만하다. ‘유럽문화정보센터’에서 관련 학자들을 동원해 집필토록 한 이 책은 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독일어·러시아어·체코어·중국어·일본어 등 7개 언어권별로 한국문학의 번역 현황을 점검한 다음, 그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대안 부분인데, 이 책에서 권하는 대안의 핵심은 ‘한국문학 번역학교’ 설립으로 요약된다.

이 방법이 당장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10년 이상 길게 내다볼 필요가 있다. 딱히 노벨상을 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한국문학을 세계문학 ‘시장’에서 객관적으로 검증받도록 하기 위해서, 말하자면 타자의 거울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 보기 위해서도 번역의 관문을 통과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기왕이면 양질의, 제대로 된 번역을 만나야 할 것이고, 그를 위한 최선의 방책은 지금으로 보아 한국문학 번역학교 설립으로 보인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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